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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성 Oct 18. 2023

30년 신춘문예 소설당선 도전기

09 - 서킷브레이커 : 작가가 잘 아는 소재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나를 보다]와 [킹]이 최종심에서 한 번씩 낙선한 후에 나를 찾아왔다. [서킷브레이커]는 투자증권회사를 다니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전직 후 한화투자증권의 PB로 근무하는 내게는 아주 익숙한 설정이고, 익숙한 인물이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는 디테일이 살아난다. 디테일은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서킷브레이커는]는 원래 과열된 전기회로를 차단하는 안전장치를 말하는 전문용어이다. 회로차단기는 누전이나 과부하 시 자동으로 전류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주식시장에 적용하여 주가시장이 폭락하거나 반대로 폭등해서 그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되면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고 주식시장의 현물과 선물 모두 거래가 15분간 중단된다. 나에게 이 서킷브레이커는 다양한 함의를 품은 좋은 소재로 다가왔다.

   인생에도 가끔씩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그런 질문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서킷브레이커는 투자시장에 참여한 욕망에 빠진 한 사내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불나방처럼 한방의 이익을 추구하던 주인공의 추락은 자본주의와 물질우선주의에 빠진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냥 추락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회의 틈을 찾아 살 길을 찾으려 한다. 그의 모습을 보는 독자들의 시선이 어떨지 나는 궁금했다.  

  결국 이 소설은 내게 의미 있는 상을 안겨주었다. 처음에는 신춘문예에 투고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계속 낙선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공모전 공고는 내 마음을 급하게 했다. 근로자문화예술제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축전이다. KBS와 근로문화재단이 후원하고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예술공모제였는데 문학, 미술, 연극, 음악 등이 망라되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해외여행의 특전이 있었다.

  [서킷브레이커]가 증권투자회사를 배경으로 근로자의 얘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나는 문화예술제의 취지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자신감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왠지 수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신춘문예 최종심에 들었다는 자부심도 한몫했던 것 같다. 더욱이 장관상을 수상하면 월간문학에 작품이 실리고 등단자격을 준다는 공고의 내용도 나를 혹하게 했다.

  투고를 해놓고 은근히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와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무슨 상이냐고 물었다. 문학 부분에서는 소설, 시, 수필, 희곡 네 부문에서 대상 1명을 뽑았고 각 부문의 금상, 은상, 동상을 각각 선발했다. 대상과 금상 수상자에게는 해외여행의 특전이 있었다. 전 부문에서 단 1편 대상이 되어야만 중소기업부장관 상을 수상하고 등단자격이 주어졌다. 전화 속 목소리는 내가 소설부문의 금상을 수상해서, 시상식에 내보낼 방송촬영과 인터뷰가 있으니 찾아오겠다고 했다. 소설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니 기뻐할 만도 한데 나는 대상이 아닌 것이 못내 아쉬웠다. 혹시 대상작은 어느 부문에서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수필부문에서 나왔다고 했다. 역대 대상작은 대부분 소설에서 나왔던 것을 나는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 수필이 대상이라니, 내 작품은 또 한 고비를 못 넘는구나,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결과적으로 이 수상으로 인해 나는 지속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서울대 권영민 평론가가 심사위원으로서 당선평을 썼고, 이 작품은 수상작품집이 되어 책으로 나왔다. 다음은 나의 당선소감인데, 이때의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6년 전 여름,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감히 10일간의 휴가를 내고 몽골여행을 감행했다. 칭기즈 칸의 고향이라는 빈데르 솜과 광활한 초원을 굽이쳐 흐르던 오논 강을 보면서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무엇’과 대면했다. 말 잔등에 올라 눈을 감으니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눈을 뜨니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 안에서 질주(疾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바람처럼 달려 언덕 같던 지평선에 다다르니 저만큼 지평선이 또 물러나 있었다. 달린 것은 말인데 오히려 내 숨이 가빴다. 말에서 내렸다. ‘무엇’이 말을 걸어왔다. ‘네가 뛰는 그동안 내가 숨이 가빴다고…….’ 그 순간 메뚜기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허브향이 코를 찔렀다. 초원이 온통 허브 천지였다. 그때 나는 ‘무엇’에게 말했다.

  ‘이제 숨차지 않게 할게.’

  여행에서 돌아와 한화증권으로 이직했다. 즐겁게 일하고, 여유를 가지려고 애썼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과 했던 약속이 파기될 뻔도 했다. 그때마다 허브 향과 함께 하르륵 날아올랐던 메뚜기를 떠올렸다. ‘무엇’과 얘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쓰다 보니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소설이 되었다.

  땀 흘리며 일하는 즐거움을 놓을 수 없다. 더 열심히 내 분야에서 뛰고 달릴 것이다. ‘무엇’이 때론 숨차다고 말해도 오히려 유산소운동이니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하겠다. 한화증권과 연을 맺고 투자의 길을 가는 모든 고객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서킷브레이커」는 나의 몽골여행처럼 숨 가쁘게 달리는 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잠깐 말에서 내려 땅에 서면 아름다운 메뚜기가 허브 향과 함께 하르륵 하르륵, 당신에게로 날아갈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당선을 나는 오래 기억했다. 소설을 통해 나와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와 소통하고,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위로와 응원을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무엇’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게 말을 건다. 소설은 내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앞으로 쓰고자 하는 나의 소설도 독자들에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서킷브레이커] 당선으로 나는 상금 200만 원과 5박 6일의 태국여행을 다녀왔다. KBS의 PD 한분이 동행해서 여행의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남겨 주었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태국, 성전환수술이 자유로운 나라 태국, 서두르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내뱉는 말 ‘처이처이’ 나는 이 여행을 통해 태국을 ‘처이처이’의 나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 처이처이의 뜻이었다. 한편으론 천천히 그러나 계속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나의 소설 쓰기도 처이처이, 천천히 그러나 계속 써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이제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소설창작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또 어떤 작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어긋남으로 발생한 두통은 조금씩 사라졌다.

  [서킷브레이커]를 집필하면서, 나는 취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 소재는 내가 잘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취재는 필요 없었다. 배경지식과 에피소드, 디테일한 용어 등 거침없이 사용할 재료들이 충분한 상태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소설을 자신의 경험만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소재가 잡히면 그에 대한 충분한 취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알고, 자세히 알고, 깊이 안다는 것은 튼튼한 지반 위에 건축된 집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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