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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빵 Dec 01. 2020

프리즘

사랑에는 결국 평행을 무너뜨릴 용기가 필요했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발 없는 새는 평생에 꼭 한 번 땅에 내려 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라고 말한다. 사랑을 불신해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할 줄 몰랐던 고독한 영혼을 상징한 ‘발 없는 새’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새일까? 


그리스어로 Apus는 ‘다리가 없는’이라는 뜻인데, 칼새과(Apodidae)의 어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칼새과의 칼새는 번식을 위해 둥지를 틀 때만 땅에 내려 앉는데, 10개월간 한 차례도 착지하지 않고 비행한 기록도 있다. ‘발 없는 새’가 땅에 내려앉는 이유가 고독한 소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이면인 번식 때문이라는 것이 반전이다.  


손원평 작가의 <프리즘>에 등장하는 호계는 스스로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아비정전>판 ‘발 없는 새’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한 호계가 고독하고 긴 비행 끝에 (칼새처럼) 마음의 둥지를 틀 땅을 힘들게 발견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예진이다. 


예진은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해야 할 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쉽게 빠지는 티티새 같은 사람이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에 의하면 티티새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노래 하는 일에 고민따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예진의 쉬운 사랑의 방향은 호계로 향하지 않았는데, 예진이 사랑하는 도원은 또 재인을 사랑하며, 이들의 사랑은 한 쪽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여행하는 철새를 닮았다. 


여행은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킨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의 고집스러움도 조금씩 변한다. 프리즘이 무지개빛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쌍의 면은 평행이 아니어야 하듯이, 사랑에는 결국 평행을 무너뜨릴 용기가 필요했다.


https://www.instagram.com/bread_book/ 발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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