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이테 멜로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재해석된 옛 노래의 의미들“

by 손익분기점

나의 연재를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음악을 기억들이 플레이리스트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 20대 방황의 시간, 사랑, 이별, 슬픔까지 모든 순간은 특정 노래와 멜로디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아주 재밌는 경험을 했다. 옛날 노래를 듣는데, "어? 이 가사가 이런 뜻이었나?" 싶은 깨달음이 온 것이다. 노래의 의미가 내가 지내온 삶의 길이에 맞춰 다르게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스무 살 무렵, 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미래의 막연한 불안감에 공감했지만, 가사 속 '무언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의 진짜 무게는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노래의 슬픔을 흉내 냈을 뿐, 삶의 진짜 고독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명곡마저도 나의 미성숙함 때문에 그 깊은 진심을 다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때의 내가 '미성숙'이라는 두 글자를 겨우 벗어던진 나이가 되었다. 삶의 굴곡을 경험하고, 관계의 복잡함을 알게 되고, 책임감의 무게를 느껴본 후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보니 가사가 주는 무게감이 달랐다. 20대에는 그저 잔잔한 포크송이었던 것이, 이제는 잃어버린 젊음에 슬픔과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대한 담담한 체념으로 들린다.


이것이 바로 '나이테 멜로디'이다. 우리가 젊은 날 소비했던 음악이, 시간이 지나며 삶의 경험이라는 필터를 거쳐 완전히 다른 심오한 의미로 변모하는 현상이다.


이번 13화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중심으로 시간의 무게와 함께 그 의미가 업데이트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꺼내어 재해석 과정을 적어보려 한다.



스무 살, '낭만'으로 포장했던 김광석의 음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내게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이 곡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포함 나에게 일종의 미래 예고편이었다. 스무 살 무렵, 혹은 그 이전에 이 곡을 들을 때,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이입했다.


당시 나의 메모장에는 이 노래 가사 중 가장 시적이라고 생각했던 구절들이 적혀 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는 이 노래가 슬픈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20대에게 시간은 무한한 자원이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만남이 언제든 가능했기에, '무언가를 잃는다'는 개념은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노래 속의 슬픔은 단지 감정을 증폭시키는 하나의 장치였을 뿐, 나의 삶에는 침투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며 눈물 흘리는 것과 같았다. 그 당시 느꼈던 내 감정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정말로 서른 즈음에 접어들었을 때, 그제야 노래가 지니고 있던 차가운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노래가 정말 슬픈 이유는 '서른'이라는 특정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이별은 대부분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하지만 서른 즈음이 되자, 이별의 대상은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20대의 야망과의 이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음과 에너지, 철없던 날들과의 이별,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 소원해진 인연들.


이 곡은 나에게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그 곡은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사람의 담담한 슬픔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어제와 이별하고, 어제의 젊음과 이별하고, 어제의 가능성과 이별하는...





나이테가 깊어질수록, 멜로디가 주는 '위로'



흥미로운 점은, 이 노래가 더 이상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이테가 깊어질수록 이 곡은 위로가 된다.


김광석의 목소리는 이제 나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 곁에 서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세어보게 해주는 조력자가 되었다.


음악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재해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저는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때,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보다, 그 시간을 거치고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은 기억을 기록하는 일기장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을 성숙하게 편집해 주는 편집자이기도 한다. 멜로디는 그대로지만, 그 위에 덧입혀지는 가사의 무게는 우리의 삶이 축적되는 만큼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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