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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Feb 07. 2021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돌파구 노트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송강호가 아들에게 했던 유명한 대사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 가족의 인생은 전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실제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는 나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명제이다. 마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마찬가지다. 똑똑한 사람에게는 피해갈 것 같지만 예외는 없다.


아인슈타인 조차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원자폭탄을 제조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미국도 핵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편지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던 것을 깊이 후회했다고 한다. 정작 독일은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 전에 항복했고, 미국이 개발한 원자폭탄은 일본에 투하되면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몇 년을 평화 증진과 핵무장 해제를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에는 이런 계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콘트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권한이 많은 위치에 오르게 될수록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계획대로 더 잘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부서에서 회사 울타리를 넘어 시장과 사회까지 확장이 될수록 직접 콘트롤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미미해진다.


직접 콘트롤 할 수 없다면 예측이라도 정확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과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예측에도 한계가 있다. 


1년간 MIT 미디어랩에 있으면서 새롭게 기획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2007년 S전자 연구소로 돌아와 Simplicity라는 코드명의 과제를 시작했다. 12인치 풀터치 스크린을 갖는 태블릿 형태의 멀티미디어 전용 디바이스를 제안하고, 사용자가 다양한 채널로부터 유입되는 컨텐츠를 아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직관적 UX 및 인터랙션 기술을 개발 구현하는 과제였다. 지금으로 보면 iPad와 유사한 개념의 디바이스로 직관적 인터랙션 관점에서는 지금보다도 더 앞선 형태의 기술을 포함하는 개발 과제였다. iPad가 2010년에 발표되었으니, 그 때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집안의 모든 컨텐츠를 기기 관계없이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컨텐츠를 재생하는 기기도 태블릿뿐만 아니라 호환 가능한 집안의 어떤 기기로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주 보는 컨텐츠는 RFID 태그에 링크를 꺼내 두었다가 다시 보고싶을 때에는 해당 태그를 태블릿 화면에 갖다 대기만 하면 됐다. 태블릿에서 보던 컨텐츠는 해당 위치에 PDA폰을 대기만 하면 폰에서 이어서 재생되었고, 이후에는 한 손에는 PDA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는 인터랙션 만으로도 컨텐츠 이동 플레이가 가능했다.


풀터치 스크린 태블릿 디바이스의 직관적 인터랙션 솔루션(그림 출처: (a) SIGGRAPH Asia 발표논문 이미지, (b) 터치&링크 기술 등록특허 이미지)


원래 나의 계획은 해당 프로젝트 결과물을 사업부로 이관하여 상품화하도록 도와주고 나서 회사를 나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거였다. 하지만, 일은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사업부가 비슷한 개념을 기획했다면서 결과물 이관이 아닌 개발자 전배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즉, 신제품 기획을 연구소 공로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이유였다. 임원들간의 논의 끝에 연구소는 사람만 지원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결과물은 사업부로 이관하여 참조용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연구소는 그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Simplicity2.0 과제를 추진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지만, 2.0과제까지 진행을 하고 나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멀티미디어 소비의 다음 가치를 소셜 미디어로 정의하고, 7인치 폴더블 듀얼스크린 소셜 미디어 디바이스를 제안하였다. 해당 컨셉 디바이스의 UX 디자인을 포함하여 필요한 인터랙션 기술 및 시제품까지 개발에 성공하였다. 기기간 컨텐츠 심리스(seamless) 플레이, 다자간 컨텐츠 원격 감상 개념 등 많은 원천성 특허도 확보하였고, 연구소에서도 매우 기대가 커서 S그룹 기술상 과제로 출품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 나의 변경된 계획은 또다시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S전자도 2008년 4사분기에 사상 첫 영업적자를 낸 것이다. 그 해 12월 S전자는 당분간 신규 사업 등은 모두 중단하고 기존 사업에 집중할 것을 공지하게 된다. 정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2.0 과제가 끝나는 12월에 맞추어서 말이다.


새로운 디바이스의 상품화 추진은 무산되었지만, 다행히 사업부에서 테이블탑 제품과 전자칠판, eBook등 신규 상품화를 진행하는 과제들이 있어서, 그 동안 개발했던 직관적 인터랙션 기술들을 떼어내서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다. 나름 의미 있는 적용이라고 생각하고 상품화가 끝나는 일정을 고려하여 새로운 도전 시점을 다시 계획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도 잠시였다. 아이폰 출시 이후 S전자의 신제품 옴**2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욕을 먹으면서 그 화살이 연구소까지 날아오게 된 것이다. 이지경이 될 때까지 연구소는 뭘 했느냐고 말이다. 이에 스마트폰 UX 혁신 과제를 새롭게 셋업하는 긴급 미션이 나에게 주어졌고, 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스마트폰 혁신 과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과제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대발탁 승진에 과제의 성과도 잘 나오면서 갑자기 실리콘밸리에 신규 R&D 조직을 설립하는 미션을 받고 다시 주재원으로 나가게 된다.


결국 S전자에 3년만 다니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던 나의 초기 계획과는 다르게 10년을 다니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서 나를 필요로 했고, 해당 제안이 내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인 "나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인가"와 부합했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본다면, 주변에서는 늘 새로운 위기로부터 새로운 기회가 생기게 되는데 해당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인생은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도전하는 길을 갈 수도 있지만,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제안을 받은 길을 갈 수도 있고, 우연히 나타난 기회를 잡아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단편적인 상황만을 보고 인생의 길흉화복을 미리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것은 명확한 선택 기준과 선한 목적의식, 그리고 최선의 노력이 전부가 아닐까


다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선택의 기로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던 길에서 계획을 세우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결과를 콘트롤 할 수는 없다. 다만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계획을 세우는 이유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과정 중의 하나일 것이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역량을 높여가는 과정일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치기" 같아 보일지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한 목적의식을 갖고 수시로 현재 상황에 맞게 계획을 세운다면, 길게 보았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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