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트 니어링의 유서

1日1文

by 네모탈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니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탁 트인 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면 빵을 버리고
할 수 있다면 물도 마시지 않으리라.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진통제나 마취제도 필요 없다.
회한에 젓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과 위엄, 이해와 평화로움을 가지고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눠주기 바란다.

죽음은 무한한 경험의 세계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나의 삶을 충만하게 살았으므로
이제 기쁜 마음으로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삶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처럼.
그 어떤 경우라도 죽음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사나 그밖의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이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내가 죽은 뒤 빨리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작은 나무상자에 넣기를 바란다.
상장의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이나 치장을 하지 말라.

그렇게 옷을 입은 몸은 조용히 화장터에 보내져 화장되기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어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식으로든
설교자나 목사나 그밖의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된다.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가,
아내가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누군가 다른 친구가 나의 재를 거두어
바다가 보이는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나의 삶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 스코트 니어링의 유서
원재훈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중




가장 이상적인 죽음으로 회자되는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과 그의 유서를 보면 평생 그가 살아온 인생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항상 자연과 더불어 지내고, 덜 벌고 덜 쓰면서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런 방식의 삶을 고민했다. 자연과의 조화는 물론이고, 부인 헬렌을 포함한 타인들과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강조하며 살았다. 평생 조직이나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기에 죽음조차도 병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방식을 택했다.


그 사람의 죽음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잘 죽기위해 철학을 하는 거라고 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 만큼 중요하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며 사는 사람과,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딴 세계의 일인양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삶을 대하는 방식, 살아가는 모습은 사뭇 다를 것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마지막 순간 어떤 생각을 하며 떠날 것인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삶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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