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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Nov 04. 2022

현자야,

정직한 슬픔



 열일곱이 되면서 거울을 자주 보게 되었다. 중학교 때까진 청소년이라기보다는 어린이 같은 모습이었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엔 젖살이 조금 빠지면서 거울 보는 맛이 생겼다. 이전보다는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머슴처럼 놀았던 과거는 매몰차게 잊었다. 열일곱 소녀들의 봄바람은 말리려야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교칙이 엄격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머리 길이와 복장을 건들 순 없으니, 주어진 조건에서 어찌해서든지 자유를 부려야 했다. 나는 보라색 스타킹을 신고 학교에 갔다. 아무도 신지 않는 단 하나뿐인 실내화를 여성복 매장에서 찾아내 신고 다녔다. 사이즈가 커서 달가닥거리면서 신고 다녔는데 친구들은 발소리만 듣고도 내가 나다니는 것을 알았다.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 그때쯤 베이비복스 간미연 머리가 유행했었기에 너도나도 앞은 붙이고 뒤는 띄우느라 난리였다. 얼굴은 눈코입만 내놓고, 여백은 머리카락으로 가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쓰개치마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상과 엇비슷하다. 그 시절 우리는 간미연 머리로 내외하면서 유교적 전통문화의 계승자 노릇을 자처하고 있었을는지도!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



 눈코입만 내놓고 분신술에 가까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소녀들 틈에서 취향이 남다른 한 소녀가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소녀. 책상 위엔 언제나 CD플레이어가 놓여 있었다. 후에 이어폰으로 델리 스파이스나 자우림의 노래를 나누어 들었는데,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챠우챠우의 가사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지금도 종종 귓가를 맴돈다.      



 소녀의 이름은 현자였다. 현자는 열일곱의 치부책 1998 빨간 다이어리를 선물해준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현자를 볼 때마다 웃겼고, 현자는 나를 보며 우스워했다. 현자는 내 보라색 스타킹과 달가닥거리는 실내화를 비웃었고, 나는 현자의 더벅머리 숏커트와 버벅대는 말투가 사랑스럽고 가소로웠다. 우리는 방과 후에 만나거나 어울릴 정도로 가깝진 않았지만, 학교 일과 중에는 같이 잡지를 보거나, 다이어리를 꾸미거나, 국사 교과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우기 같은 시시껄렁한 것들을 하며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어댔다.       



 그런 현자가 무단결석을 했다. 봄기운이 일렁거리고 배꼽이 간질거리기 시작하던 5월이었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던 시절이었기에 그녀의 무단결석은 충격이었다. 현자의 무단결석은 소문만 무성했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옆 반이었는데 그 친구로부터 현자에 대한 소식이 흘러들었다.      



 그 시절 현자는 J-Pop을 좋아했고, 일본 한 뮤지션의 지고지순한 팬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사랑했던 뮤지션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처음엔 자살이었고, 후에 사고사일 것으로 추정되었던 그날의 죽음은 열일곱 소녀에게도, 그의 팬들에게도,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날로 현자는 두문불출했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봄바람은 꾸준히 청춘을 간지럽히고, 교실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 웃고 떠들며 별스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현자의 빈 책상을 볼 때면 심장이 찌릿했다. 현자가 어떤 모습으로 울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매사 무덤덤한 표정으로 툴툴대긴 해도 그녀가 남달리 청명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쪽지 편지 하나에도 정성 담아 꾹꾹 눌러쓴 글자들로 채웠고, 그녀의 단어들은 마구 뱉어진 듯하지만 깊이가 있었다. 그녀가 듣는 음악, 틈날 때마다 펴 바르던 핸드크림 같은 것들.     



 현자의 빈 책상은 계속해서 일상을 정지시켰고, 교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넘치는 생명력과 죽음에 대한 양가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고, 죽음 앞에 무너진 마음에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우리는 이리도 무심할 수가 있을까. 열일곱의 팔딱거리듯 넘치는 생명력이 얄궂었다. 자꾸만 심사가 뒤틀렸다.      



 현자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학교로 돌아왔다. 교실에 들어설 때 본 그녀의 해말간 얼굴을 기억한다. 그녀는 무사했고, 더욱이 평온해 보였다. 열일곱의 현자는 정직하게 울고 깊이 슬퍼하고 온 맘으로 애도했다. 뜨겁게 앓고 돌아온 그날의 현자를 보며 어른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 같다. 호수처럼 깊은 눈이었다. 그런 현자가 더 좋아졌다.     



 며칠 전, 단톡방의 알림음을 무음으로 설정해두었다. 젊은 시절부터 희로애락을 나누며 함께 자라온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이다. 지금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철없던 시절에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기에 소식을 나눌 때마다 애틋함을 느낀다. 그런데 요 며칠 단톡방에서의 즐거운 대화가 나를 슬프고 괴롭게 한다. 평소와 같은 농담, 평소 같은 ‘ㅋㅋㅋㅋ’인데 이리도 모질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뒤틀린 내 심사 때문이리라.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젊음이 목숨을 잃고 많은 이들이 병상에 누워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그들 곁을 지키고 있다. 꽃 같은 목숨이 스러졌는데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있는 것이니, 요란하지 말라 한다. 슬픔의 자리를 이불 개듯 서둘러 개서 말끔히 정리하라 한다. 슬픔의 크기가 같을 수 없고 같더라도 드러내는 모양이 다름을 안다. 그러나 다만, 밥알을 넘기고 일을 하고 전화도 받아야 하지만 정직하게 울고 깊이 슬퍼하는 것으로 마음 한 자리를 내주고 싶은 것이다. 아픈 이의 안부를 묻는 생이면 좋겠다.     



 열일곱 현자의 해말간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녀의 정직한 슬픔이 몹시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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