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성이 많다는 건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신혼 초기,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남편을 통제하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이 해줬으면 하는 바가 명확하게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이것이 반복되면 제발 나의 요구를 알아달라는 호소의 일종으로 화를 냈다. 나의 요구는 주로 “신혼인데 같이 저녁 먹고, 산책도 하고 싶다. 야근을 줄여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계속 이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자, 끝내 폭주해 버리고 말았다. “야근 그만해!”
내가 지닌 여러 다른 감정과 달리 유독 ‘화’라는 감정은 쉽게 분출되었다. 일상적으로 화를 내는 행위가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제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폭주 기관차가 되든 말든 상관없어, 어서 내 말을 들어줘!’
이후로도 습관적 폭주가 계속되었다. 화가 나니, 화를 냈다. 그리고 화를 내니, 더 화가 났다. 나는 분노의 쳇바퀴에 갇혀 버렸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나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간 우리의 다툼을 회고했다. 신혼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싶어서 심란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만 같고, 남편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폭주 기관차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레일 위의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처참히 짓밟으려 하니까.
같은 날 밤, 나는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뜻밖에 몇몇 친구들이 자신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할 때가 있어서 힘들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애인에게 화를 냈다가 사과했다가를 반복하는데, 본인도 자기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 보였다. 주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크고,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를 충족해 주길 바랐다. 이 생각의 근원은 상대방을 통제하며 지배하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했다. 특히 부모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 더욱 그랬다. 지배 욕구는 강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니 화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를 통제하려 할수록 스스로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될 뿐이었다.
우리는 왜 상대를 통제하고 싶어 할까?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대상관계이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아가 가진 공격성에 주목하여 ‘부분 대상관계’와 ‘전체 대상관계’의 개념을 구분했다. ‘부분 대상관계’는 유아가 어머니를 부분적으로만 인식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좋은 젖이 나오는 어머니는 ‘좋은 대상’으로, 나쁜 젖이 나오는 어머니는 ‘나쁜 대상’으로 인식하며, 그동안 어머니가 보살펴준 것이나 어머니의 감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전체 대상관계’는 유아가 어머니를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이 모두 있는 전체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단계다.
‘부분 대상관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고, 상대가 기대와 다른 행동을 보이면 분노한다. 여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법도 없어서 본인이 잘못을 해도 도리어 화를 낸다고.
나 또한 가까운 대상일수록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분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나 싶었다. 나와 남편을 위해 더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마인드 셋을 새롭게 하고, 제어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놀랍게도 그간의 폭주가 무색할 정도로 생각보다 쉽게 제어가 되었다. 결국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감정을 행동화해서 고조시키느냐, 제어해서 잠재우느냐는 오롯이 내 역량이자, 내 선택이었다.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에 따르면, 감정을 먼저 느끼고 신체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먼저 반응하고 이후에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의 심리학자 톰킨스의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은 표정이 감정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웃는 표정을 하면 정말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화가 나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화를 내서 화가 나기도 하는 듯싶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화나는 감정에 대해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분명 화를 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때에도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좋을지 직시해 봐야 한다. 화낼 ‘가치’가 있는 일인지,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 화를 내서 ‘달라질게’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