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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11. 2020

[단편] 주인님을 찾습니다 - 6

아파트 동 대표 체험기


 아파트 외벽 공사도 잊힐 무렵, 여느 때와 같이 동 대표 회의는 시작되었다.

 늘 비어 있어 오히려 공석이 익숙한 방청석에 호리호리한 몸매, 엷고 붉은 안경테에서 풍기는 만만치 않은 인상, 처음 보는 젊은 여자 입주민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 전, 회장은 한 주민께서 의견을 제시하고자 참석하셨다고 소개했다. 

 그 민원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은 1동 주민이며 이사 온 지 약 6개월 정도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 주장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그녀는 근처 H아파트에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다 최근 첫 애가 초등학교에 진학하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분가해서 이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다.

 이사 전 아파트에서는 동 전체에서 하루에 한 명씩 경비원이 근무하고, 경비원 아저씨들 근무태도도 좋아 무슨 힘든 물건이라도 손에 들고 있으면 즉시 뛰어와 거들어 주고는 했는데, 우리 아파트는 경비원 인원수를 두 배로 운영하면서, 근무 태도는 도대체 누가 상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엉망이다.

 주민들에게 별 도움도 안 되고 경비비만 두 배로 나가니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관리소장에게 묻는다. 

 “우리 아파트는 주차관리를 누가 담당합니까?

  “주차 관리 담당자요? 주차라..
  새로 온 관리소장은 머뭇머뭇하고 그 옆에서 보조하던 관리사무소 오 과장이 얼결에 껴든다.

 “주차 관리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주차는 주민이 각자 알아서 해야죠.”

 “주차관리를 주민들이 알아서 한다고요?” 민원인은 갸우뚱하면서 되묻더니,

 “그럼, 경비원의 주 업무는 뭔가요?” 하고 또 묻는다.

 “경비 업무가 주 업무죠” 이번에는 관리소장이 답한다.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경비업무가 주 업무라면 왜 이렇게 많은 경비원이 필요하죠? 주변 다른 아파트처럼 자동 출입문을 설치하고, 인원수를 줄이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요.

 P과장은 갑자기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회장 얼굴을 보니, 붉어지다 못해 피가 어딘가 터져 나갈 구멍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고, 다른 동 대표들도 어안이 벙벙한 채 마치 그 민원인이 자기들한테 무슨 질문이라도 할까 두려워 어쩔 줄 모르며 각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혹시, 사시던 H아파트는 최근 지어진 신축 아파트라 자동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고 주차시설도 잘 돼 있어 경비원 수요가 그만큼 적은 것 아닐까요?

 동 대표 중 어느 한 분이 의견을 낸다.

 “그 생각도 해 보았는데요... 혹시, 동 대표님들은 출퇴근 바쁜 시간에 경비원 아저씨들이 주차 도와주는 거 보신 적 있으세요?

 제 경우에는 여자인 제가 혼자 아무리 끙끙거려 차를 밀고 당겨도 경비실에 앉아 TV만 보시던데요. 그런 식이라면 경비원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 

 “잠깐만, 잠깐만요. 지금 경비원 자르자고 여기 오신 겁니까?

 갑자기 회장이 끼어든다.  

 “무작정 경비원을 자르자는 게 아니고요. 다만, 주변 아파트를 다 보세요.

 우리 아파트처럼 경비원이 이렇게 많이 운영되는 곳이 있는지.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요. 그럼 경비원을 이처럼 많이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게 아닙니까?

 제가 여러분들께 그 이유를 묻고 있는데 대답을 제대로 못 하고 계시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파트에 맞는 경비원 역할이 무엇인지, 필요한 적정 경비원은 몇 명인지를 산출해서, 공청회나 주민투표 형식으로 주민들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민원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냉정함 그 자체다. 

 “나는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누구를 자르는 건 못합니다. 최근 TV도 못 보았습니까? 최저 임금 때문에 경비원을 무더기로 자른다고 사방에서 난리잖아요, 난리..

 그는 간당간당하게나마 붙어 있는 ‘나는 교육자입니다’라는 자존심을 이마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자존심이었다.

 “회장님! 갑자기 평생 교육자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죠? 회장님은 우리 아파트 입주민을 위해 지금 회장 자리에 앉아 계신 것 아닌가요? 여기가 학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자르는 것은 비윤리적 행태입니다. 비 윤리... 모두 함께 살아야지!

지금 비윤리 말씀하시는데, 그럼 제가 비윤리적인 사람이라는 건가요?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진다. 

 “그러면, 주민투표나 주민의견 청취를 하실 계획은 있으세요?”   

 “주민투표는 해 봐야, 결과는 뭐... 뻔하지, 뻔해! 주민들이야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그래 놓고 덤터기는 누가 다 뒤집어쓰고!

 회장은 점점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새로 온 관리소장은 그런 회장 눈치를 보면서 메모지 위에 볼펜을 잡고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데 의미 있는 글은 아닌 것 같다. 

 “제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 대표 회의가 주민들 입장에서 경비원 문제를 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경비원 아저씨들 고용을 위해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로서는 동 대표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경비원을 감축해야 하는 일에 나서고 싶지 않아 공론화를 회피한다는 느낌이 자꾸 듭니다. 아닌가요?


 민원인 추궁에 회의실 분위기는 더욱 무겁다.    


 잠시 후, 회장은 머리를 감싸며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니 동 대표들과 상의하여 결론을 내도록 하겠고, 그 결과를 관리소장을 통해 민원인께 직접 설명드리겠다면서 마무리 지었다.

 결국, 속 시원한 설명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한 민원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떠났다.

  민원인이 가고 나자, 오랜만에 참석한 인테리어 사장이자 4동 대표가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한다.    

 “참, 저 젊은 아줌마 너무 하시네.

 글쎄 저 집은 이사 간 먼저 주인이 우리 가게를 통해 3천만 원을 들여서 올 수리를 해 놓은 집인데, 얼마 전에 새로 이사를 오더니 집안 디자인이 너무 어둡다면서 앞 단지 인테리어 가게에 5천만 원을 주고 다시 싹 수리하고 입주한 양반입니다.

 근데, 경비비가 너무 비싸다? 참, 어이가 없어서. 99마지기 논을 가진 양반이 1마지기 논을 가진 배고픈 농사꾼 것 빼앗아 100마지기를 채운다더니 부자들이 더 무섭다니까요, 부자들이!


 하면서 흥분했지만, 전체적으로 회의실 분위기는 마치 장마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지고 더 이상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그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회장이 정리를 했다.

 “오늘은 회의를 더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죄송하지만 다음 주에 다시 회의합시다. 그동안 제가 관리소장과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P과장은 집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2동 대표 ‘벤자민 아저씨’에게 물었다. 

 “대표님, 이런 중요한 안건은 아까 그 민원인 말씀대로 주민 의사가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주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하든지 최소한 의견 청취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글쎄요, 주민투표라... 아마 회장은 절대로 주민투표를 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아니, 왜죠? 주민 투표해서 경비원을 줄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줄이면 되는 것이고 그건 회장이 자른 게 아니지 않습니까? 투표 결과에 따라...

 “글쎄요, 회장님 생각은 아까 다 본인이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벤자민 아저씨는 여전히 모호한 태도로 담배 한 대를 피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그는 혼자 벤치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 찌르륵찌르륵 소리를 내며 우는 풀벌레 소리와 어린이 놀이터 앞을 밝히는 수은등 아래 피어나기 시작한 보라색 패랭이꽃을 지나치며 집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라도 자기 목소리, 자기 색깔을 분명히 밝혀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의 주위를 휘돌며 집 앞에까지 배웅해 주었다.     


 
일주일 후, 경비원 감축 논의를 의제로 특별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장은 일어서서 본인 재임기간이 6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중에는 경비원 감축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경비원에게 주차업무를 추가하여 주민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맞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동 대표도 아닌데 그런 험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도 회장님 뜻과 같습니다.

 한 동대표가 회장에 이어 발언했다.  

 “말이 나왔으니 저도 한 마디 하자면, 경비원 감축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10년 전부터 나온 이슈라고요. 이번 집행부가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그런 큰일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동의합니다. 그런 큰일은 차기 집행부가 힘 있게 추진하게 맞아요, 맞아!” 모두가 이구동성이었다.
    

보고듣고알고도 침묵하는 자 그도 역시 공범이다’ 

 속으로 되새기며 P과장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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