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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14. 2020

[단편] 대쪽 같은 박 전무 - 1

직장인 이야기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아침에 비가 올 가능성은 50%라고 한다. 

 ‘오십 퍼센트!’  

 그럼 비가 온다는 것인가? 
 비가 안 온다는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늘을 쳐다봐도 역시 비가 올 듯 말 듯 애매하다. 

 새벽부터 회사 등산반 사무실은 전화로 불이 난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전화가 끊임없이 사방에서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 붙는다. 

 “사장님은? 사장님은 무어라 하셔? 오늘 가신데? 안 가신데?” 

 다짜고짜 묻는 분은 목소리로 보아 부사장이다. 그는 성질 급하기로 회사에서 악명이 높다. 물론, 급한 성질은 아랫사람 대할 때만 나오고, 자기보다 윗사람에게는 단지 순하고 어린양羊 일뿐이다. 

 “아직.... 아직 연락이 없으십니다.”

  “그래? 그럼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시면, 가신다는 거야? 안 가신다는 거야?” 

 그는 답답한 듯 재차 다그친다.

  “......... 그건.... 저희들도 정확히......”

  “아이..... 참..... 김 과장, 아니 김 회장!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참.. 내... 그나저나 사장님한테 전화 오면 나한테 즉시 연락 좀 해줘. 알았지?”

 같은 식의 전화가 감사, 전무, 상무를 비롯하여 각 부서장, 수도권 내 지점장까지 한 바퀴를 돌 무렵, 비서실로 부터 사장님이 오늘은 날씨 탓으로 등산을 안 가신다는 연락을 받는다. 

 등산반 회장 김 과장은 메모를 받아놓은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해 준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등산 불참을 통보한다. 

 기진맥진한 그는 등산반 멤버들을 데리고 산으로 향한다.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에는 손님이 150명이 아닌 등산반 회원 20명이라고 전해 주었다. 

 원래 20명도 적은 숫자는 아닌지라, 어디 가도 환영받을 만한데, 15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한껏 부풀어 있던 식당 주인은 몹시 실망한 듯하다. 

 전화 건너편에서 주인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김 과장은 괜히 자신이 마치 죄인이 되어 버린 이 상황에 질려 있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우리끼리 조촐하게.”

 총무 최 대리가 옆에서 한 마디 한다. 

 “그럼요, 그분들이 언제부터 등산반에 관심을 가지셨다고. 이 난리입니까?”

회사에서 등산반이 이렇듯 주목을 받기는 처음이다. 원래부터 산을 좋아하는 직원끼리 그야말로 동호회 차원에서 월 1회 등산을 하는 모임이다. 

 홀수 달에는 수도권 밖, 예를 들면 치악산이나 강화도 마이산 정도를 1박으로 등산하고, 짝수 달에는 수도권 내, 수락산, 도봉산, 청계산을 순회하는 평범한 동호회이다. 

 회원 또한 늘지도 줄지도 않는 20여 명 수준을 몇 년째 유지하면서 나름 회사에서는 최장수 동호회로서 가끔 찬조금이라도 들어오면, 비회원들에게도 수건이나 등산용 장갑을 배포하면서 건실하게 운영되어 왔다. 



 그렇듯 조용한 동호회에 연초부터 이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뜬금없이 회장인 김 과장과 점심식사를 하자는 임원이나 핵심 부서장들이 늘어난 것이다.

 김 과장은 전산운영부 과장으로 근무지가 주목받는 부서도 아니었고, 본인 자체가 묵묵히 주어진 일이나 하는 직원이라고 생각되는 인사다.

 그런데, 임원들이 갑자기 동호회 현황이나 활동 내역에서부터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회사가 무엇을 지원해 주면 좋을지를 묻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총무담당 상무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래, 등산반은 활동비를 어떻게 조달합니까?”

 “네, 회사에서 년 100만 원을 지원해 줍니다. 나머지는 회원들이 월 2만 원씩 갹출해서 회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100만 원? 그래요? 아니.. 그 100만 원을 누구 코에 붙이라고...”

 “총무과장이 회사 사정도 그렇고... 다른 동호회와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하면서 인상이 어렵다고 해서, 벌써 3년째 동결 중입니다”

 김 과장은 답답한 듯, 하소연을 한다.

 사실, 수도권 밖으로 등산 갈 때에는 전세버스, 식사비용이 만만치 않아, 회사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는 수 없이, 등산반 임원진 다섯 명이 월 칠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직장인으로서는 부담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총무과장, 그 친구가 보면 성실하고 다 좋긴 한데... 유연성이 부족해. 너무 스티프stiff 하단 말이야. 

 등산반이 어디 놀러 다니는 모임인가? 회사에서 적극 지원해 줘도 부족할 판에... 내 알아보고 조치해 볼게”


 총무담당 임원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두 팔 걷어 부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투로 두고 보라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러더니, 그날 오후에 타 부서에 너무 뻣뻣하게 굴어서 별명이 ‘뻗대기 과장’이라고 불리던 총무과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동안 오해가 있었다며, 필요한 지원금이 얼마냐고 다짜고짜 묻고는, 이번 달부터 즉시 처리해 주겠다면서 어디 가서라도 지난 일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김 과장은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달 말에 새로운 사장이 부임했다.  

 김 과장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등산반 민원이 해결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임 A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등산을 특히나 좋아한다는 소문이 안테나가 빠른 임원들에게 미리 알려졌던 것이다.

 A사장이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난 5월 중순이었다. 갑자기, 비서실에서 이달 말 등산 일정을 물으러 왔고, 곧이어 사장님이 참석하시겠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 후, 등산반 역사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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