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장동 May 15. 2020

[단편] 대쪽 같은 박 전무 - 2

직장인 이야기

 
5월 말, 청계산 산행! 

 아침부터 날씨가 아주 좋았다. 

 새벽 어스름이 물러가자마자,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은 그야말로 한 점도 없었다. 

 청계산 초입부터 사장, 부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 전 부서장, 수도권 지점장, 회사 과장급 이상이 모두 모였다.

 원래 산행 주인인 등산반 회원들은 500ml 생수통, 오이 두 개씩을 나누어 주며 행사 진행에 정신이 없다. 

 한편, 산행 중에는 신임 A사장에게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간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산 정상에서는 단체사진 촬영 때 사장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비추기 위한 간부들의 혈투가 벌어졌다. 

 사장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서 등산을 통해 회사 경영의 원리를 터득했다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모두 그 말을 처음 들어보는 양,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하산을 시작할 즈음, 임원들의 요청으로 사장은 일대일 기념 촬영에 응했다. 

 마치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사장은 그대로 서 있은 채, 회사 간부들이 순서대로 사장 옆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계속되면서, 도대체 등산을 온 건지 행사를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산 후에는 산 아래 근처 식당에서 막걸리까지 곁들인 점심식사가 준비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사장은 예정에도 없던 마이크를 잡고 조만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등산 단합대회 개최를 고려해 보자며 건배를 제안했다.

 모두 ‘건배!’ 하며 그날 등산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장이 막걸리 서너 잔을 마시고 웃으며 한 농담을 총무 담당 임원이 현실화시켰다. 

 얼마 후, 그는 양평의 한 콘도를 통째로 빌리고, 촘촘한 스케줄을 만들어 1박 일정으로 전 직원 등산 단합대회를 개최하였다. 사장은 그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며 놀라워했다. 

 반면, 직원들은 총무 담당 상무의 윗사람을 향한 상사병이 도졌다며 투덜거렸다.
 



 행사는 많은 인원이 참석한 관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간에만, 산 높이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시되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 갑자기 전 직원이 모여 있는 숙소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주요 내용은, 숙소 근처에 높고 험준한 산을 대상으로 사장님이 야간 산행을 하실 예정이라며 희망자에 한하여, ‘반드시 희망자에 한하여’라는 단서를 달며, 동행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말이 희망자에 한해서이지, 사장이 가겠다고 하는데 어느 임원이나 부서장이 숙소에서 버티며 못 가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야간 산행 신청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참석자 모두 간부급들이었다.

 하루 종일 산을 헤매다 돌아온 그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장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야간 산행에 따라 나섰다.

 명색이 등산반 회장인 김 과장도 대열에 동참했다. 그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행을 하다 보니 두 부류의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임원들을 비롯한 회사 주류 간부들이었다. 

 “사장님, 야간 산행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아주 색다른데요.”

  “그래? 최 상무가 이제야 등산의 맛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구먼, 등산하면 야간 산행이지.

 낮에 사람들만 버글버글 거리고 먼지 펄펄 나는 등산이 무슨 산행인가? 안 그래? 그런 등산은 건강에도 해로워.
” 

 “맞습니다. 등산은 역시 야간산행입니다.” 

 하며 모두 이를 악물고 마치 야간 산행이 진정한 등산인 양, 

 친숙한 척하며 어떻게 하면 사장 지근거리에서 한 번이라도 더 사장 눈에 띌 수 있을지, 

 한 번이라도 사장과 말을 섞을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다. 

 이에 신이 난 사장은 자신이 대학시절 등산반에서 별명이 다람쥐였다며 가파른 산을 진짜 다람쥐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그룹은 뒤에 쳐진, 비주류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어차피 사장 주변에는 임원들을 비롯한 회사 주류 그룹들이 쳐 놓은 ‘인의 장막’을 뚫고 사장과 마주 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치고, 

 그렇다고 명색이 간부인데 숙소에서 맘 편히 잘 수도 없는 처지라 억지로 따라나선 그룹이었다. 

 그들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총무담당 상무의 과잉 충성으로 시작된 이 소동을 야간 산행이라는 큰 판으로 키운 비서실을 탓하며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그놈의 ‘내시부內侍府’가 문제라고 비아냥거렸다.  



한편, 이 야간 산행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도 박 부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장이 신임하는 기획부서 부장으로서 사장 지근거리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비만에 땀을 많이 흘리는 부실 체력을 보유한 죄로, 

 그의 의지와 반비례해서, 사장과의 거리가 안타깝게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 헤드 랜턴을 켜고는, 마치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쉴 새 없이 닦아내며 잠시도 쉬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등산반 김 과장이 보다 못해, 

 “박 부장님,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좀 쉬시고 올라가시죠.”

 라고 하자, 

 그는 
 “... 헉.... 헉.... 아니야... 쉴.. 수.. 없어. 쉬면 안 돼. 헉... 헉... 그나저나 사장님.. 사장님은 어디 계시나?... 사장님을 찾아야 돼.” 

 라며 곧 쓰러질 듯하면서도 사장 소재지를 찾아 절규하고 있었다. 



 사장이 임기를 마칠 무렵,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임 덕lame duck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부터, 갑자기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그 많던 자칭 등산 애호가들이 흔적도 없이 썰물처럼,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하얀 거품을 남긴 채 슬쩍 뒤로 사라지는 파도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내 20여 명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등산반 인원수는, 한때 간부급을 중심으로 급등하여 150여 명을 훌쩍 넘던 전성기를 지나, 어느새 다시 원래 모습이던 숫자로 되돌아와 있었다.  

 << 계  속 >>


작가의 이전글 [단편] 대쪽 같은 박 전무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