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장동 Apr 27.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1


 08시 59분 35초, 

회사 출입증 카드로 1층 검색대를 통과한 후, 엘리베이터 위치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힐끗 쳐다본다. 옅은 분홍색 숫자가 3층과 5층을 가리킨다.

 ‘흥, 그럼 그렇지!’

 평소에도 인정머리 없던 저 엘리베이터가 이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매몰차게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고 판단한 권 계장은 오른쪽 비상용 계단을 향해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5층 사무실까지 가려면 25초만이 남아있다. 한 층마다 5초에 돌파해야 한다. 뛰어야 산다, 뛰자!    
  

 마침내 그가 5층 사무실 출입문 옆에 설치된 카드 리더기에 본인 출입증을 터치한 시간은 8시 59분 57초. 회사 규정상 업무시간은 오전 09시부터 시작된다. 그는 3초나 빨리 사무실에 도착한 것이다.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팀원들 모두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데, 그들 머리 위에 큼지막한 얼음 덩어리 한 묶음씩이 매달려 있는 듯 분위기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미끄러지듯 슬쩍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열고 키보드를 치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팀원 중 선임인 박 과장이 눈짓을 주면서 실장 자리를 향해 양쪽 검지를 머리와 위로 번갈아 찌른다. 실장이 몹시 화가 났다는 표시다.     
 

 ‘왜 화가 나셨을까? 규정시간보다 3초나 빨리 출근했는데!’        


 한편, 허 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직장생활 20년 만에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심한 배신감과 함께 헛웃음이 배어 나왔다.  


 ‘분명히, 저 신입사원 녀석이 내 인내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를 어쩐다!’    
 


 
 문득 4개월 전前이 떠올랐다. 2월 1일이었다. 1개월간 회사 연수를 마친 인턴사원 중 권 계장이 허 실장 부서로 발령을 받아 왔다. 큰 키에 갸름하고 한 눈에도 부티가 났다. 이력서를 보니 화려한 학력에 다양한 스펙을 줄줄이 달아 왔다. 집도 회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부를 상징하는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실장은 그 인턴사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회사가 신입사원을 채용한 건 무려 3년 만이다. 최근 몇 년간 경영환경이 몹시 어려워졌고, 재작년에는 어쩔 수 없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여 선배들이 무려 100여 명이나 회사를 떠나는 일까지 생겨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나마 작년 하반기부터 마케팅 부문과 해외사업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인력수요가 늘어 예년의 절반 수준인 50여 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누군들 귀엽지 않고, 반갑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허 실장은 박 과장과 인턴사원, 셋이서 회사 근처에서 치맥으로 약식 환영회를 열었다. 말을 걸어보니, 똘똘하고 반듯한 게 요즘 신세대 젊은이의 표상 같기도 해서 격려의 말을 해주고, 2차 술자리는 박 과장에게 맡긴 채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본부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그는 7시 45분경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신입 인턴사원은 먼저 출근해 자리에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다소 놀란 그는,

 “Good morning 인턴, 벌써 출근했어? 직원들은 8시 30분 정도에 오는데...” 

 “실장님, 오셨습니까? 신입 사원답게 일찍 출근해서 일하려고 합니다.”

 “참, 저 친구... 자세가 되어있네... 그래! 그런 모습 보여주는 거 아주 좋아 보여. 기대되네.”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료를 챙겨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허 실장은 평소와 같이 또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도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출근해 있는 인턴을 바라보며 사람 하나는 제대로 뽑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3개월 흘러갔다. 어느 날, 회사 인사부서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열어보니, 인턴사원 평가표가 첨부되어 있었다. 개인감정을 일체 배제하고 회사와 조직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그동안 지켜본 인턴사원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지침이었다. 평가 등급은 S, A, B, C, D로 구분되어 있었다.

 허 실장이 고개를 들어보니 자리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전화를 받고 있는 인턴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마음에 들어!’ 그는 자신 있게 ‘S' 등급 란에 체크를 해 놓고 별도 설명서를 작성하여 그동안 관찰한 그의 업무태도, 성실성,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세 등에 대해 상세히 기재한 후 인사부서로 회신을 보냈다.  
   

 인턴 수습기간 3개월이 종료되고 정식 신입사원 발령장을 받는 5월 첫째 주 월요일. 허 실장은 입사 동기생 중 유일하게 ‘S등급’을 받은 그가 대표로 사장님 앞에서 선서와 함께 신입사원의 각오를 발표하는 장면을 보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퍼졌다.

 그때부터 계장이라는 정식 직위를 부여받은 권 계장은 앞으로도 3년간은 인턴사원 시절의 자세와 각오로 회사를 위해 일하겠다는 인사말을 발표해 사장님과 임원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날 점심때 만난 인사실장은 인턴사원 50명 중 유일하게 S등급을 부여하고 별도 사유서까지 첨부를 하였기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오늘 그 친구 연설을 듣고 보니 이유를 알겠다면서 허 실장 안목을 칭찬해 주었다.   
                                              << 계속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