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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pr 28.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2

그 다음날 화요일 아침.

 즉, 권 계장이 인턴사원의 딱지를 떼고 정규사원으로 발령장을 받은 다음날. 본부장 주관으로 간부회의가 8시부터 예정되어 있어, 허 실장은 미리  사무실에 도착했다. 회의 자료를 주섬주섬 챙기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늘 먼저 와 자리에 앉아있던 신입이 보이질 않았다.

‘어제 동기들하고 밤새 달린 거 아냐?’
라고 생각하며 그는 바삐 걸음을 옮겨 본부장실로 향했다.    
  

 그 다음다음 날 수요일 아침. 

 부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8시 30분보다 약 10분 정도 먼저 사무실에 도착한 허 실장은 이번에도 신입사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친구 또 밤늦게까지 달렸구먼. 하기야, 정규 직원이 되었으니... 화끈하게 제대로 달려야지. 그런 친구들이 일도 확실하게 한다니까!’

 하면서 어느덧 자기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요일, 금요일이 이어졌다.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

 차가 막힐 것에 대비해 평소보다 일찍 8시에 출근한 허 실장은 권 계장 자리가 또다시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득, 지난주에 그가 자기보다 늦게 출근한 사실이 떠올랐다.

 ‘왜 그럴까! 어디 아픈가? 낮에는 멀쩡한 거 같은데...’

 허 실장은 8시 30분부터 출근하기 시작하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8시 50분이 넘도록 그가 출근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8시 59분이 지나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출입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 신입사원 모습을 보면서,     

 ‘이건 뭐지!!!’         

 그리고 한 주 내내 아무 말도 않고 신입 권 계장의 출근시간을 관찰했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8시 59분경에 벌게진 얼굴로 뛰어들어 와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허 실장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당황했다. 어디 아픈가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이라도 다니는지 궁금했다.

 ‘집이 어디였더라?’

 서랍에 있는 이력서를 다시 뜯어보니 회사에서 2~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 걸어서 오면 20분 정도 거리였다.     
 

 그리고 다른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는 권 계장이 일찍 출근하려나?’

 회사일 만으로도 무척 바쁜 허 실장이 어느덧 신입의 출근시간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리에 앉아 지켜보니 그의 자리는 오늘도 역시 비어있다. 8시 50분, 모두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그를 제외하고.

 잠시 후, 창밖을 우연히 바라보던 실장은 8시 59분경에 회사 바로 앞에서 택시 한 대가 급히 서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총알같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는 권 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약 40초 후에 역시 얼굴에 숨이 가득 찬 그가 자리에 조용히 앉아 컴퓨터를 켜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았다.

 ‘무슨 개인적인 사정이 있나?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슬슬 걱정이 되던 실장은 그날 점심식사를 그와 단 둘이 하면서 혹시라도 직장 상사로서 본인이 알아야 할 일이라도 있는지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권 계장, 회사일은 어때? 재미있어?”

 “네, 실장님.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 중간 생략...) 참, 동기들 사이에서는 우리 실장님이 회사에서 브레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열심히 일 배워서 저도 실장님처럼 회사의 인재가 되겠습니다.”



 “뭐, 내가 무슨... 회사의 브레인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간 얼굴이 벌게진 그는 당황한다. 그래도 그런 소문이 저 어린 신입사원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하니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권 계장이 날린 그 한 방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잊어버린 실장은 식사를 마치고 테이크-아웃을 한 커피를 들고 회사 근처까지 와서야 겨우 생각이 난 듯,

 “참,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조심스레 묻는다.

 “아니요. 그런 거 없는데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의아하다는 듯, 상사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답변한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그런데 왜 출근시간이 그렇게 바뀌었지?”     

 출근시간이요제가 게을러서요좀 늦게 일어나는 편이거든요.”     

 “.........”
실장은 어이가 없어 갑자기 할 말을 잊는다. 잠시 후,

 “아니 그럼 인턴기간 중에는 어떻게 그렇게 일찍 출근했나?”
천연덕스럽게 답변하는 그를 보며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평소 허 실장답지 않게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아, 그때 인턴기간이요?
그때는 정식 발령받기 전이니까 아무래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지금은 정규직 직원이니 회사 규정에 나와 있는 출근시간 9시에 맞추면 되고요.”

실장은 부하 직원의 일목요연한 답변을 들으면서 기가 막혔다. 하지만 순간 갑자기 소심해지면서,

 ‘요즈음 신입사원들 사고방식이 우리 세대와 확실히 차이가 있다고 하더니만... 혹시 내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꼰대’가 아닐까? 저렇게 내 면전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정도면..... 정말 나만 뭘 모르고 있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이 확 밀려왔다. 의심이 의심에 꼬리를 물고 갑자기 자신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더 이상 묻기가 어려웠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혼자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박 과장을 회의실로 불러 출근시간 9시란 미리미리 출근해서 그날 일정을 준비한 후, 최소한 9시부터는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지 시키고, 신입 사원답게 선배보다는 예의상 조금 일찍 출근하는 것이 회사 관례임을 교육시키라고 지시를 내렸다.  
    


 
다음 날, 허 실장은 임원 보고를 마치고 회사 좌측 계단으로 내려오다 우연히 권 계장을 붙들고 통사정을 하고 있는 박 과장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춘다.

 그는 ‘또라이’ 같은 허 실장 지시라 어쩔 수 없으니 자기 입장을 봐서라도 제발 8시 30분까지는 출근해 달라고 부탁하는 박 과장의 애처로운 모습과,

 처음부터 마뜩잖은 듯한 태도로 삐딱하게 듣고 있던 권 계장이 마지못해 노력해 보겠다며 고개를 성의 없이 끄떡끄떡 하는 장면을 보았다.

 제발 그렇게 해 달라고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박 과장을 보면서, 그는 지금 선배들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저 신입사원이 앞으로 자기를 어떻게 괴롭힐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긴 한숨과 함께 권 계장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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