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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pr 29.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3

권 계장이 회사에서 처음 부여받은 업무는 마일리지 정산精算이었다. 허 실장은 업무를 결정하기 전에 회의를 열어 부서 직원들과 신입사원 본인 의견을 청취했다. 

 “권 계장, 그래도 마케팅 부서에 왔는데 눈에 확 띄는 마케팅 기획이나 추진업무를 맡고 싶은 생각 없어”

실장이 슬쩍 그를 떠보듯이 물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일도 인간사도 하나씩 올라가며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그래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업무를 지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당찬 답변을 들으면서, 실장은 요즈음 젊은이답지 않게 속이 올찬 직원이라고 여겼다.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보았어!’
 
 마침 그때, 차장 승진을 앞두고 광光을 팔 수 있는 일에 목이 말라있던 박 과장은 자신이 하고 있던 정산업무를 넘겨주고, 본인은 마케팅 기획업무를 하고 싶다며 강한 어조로 실장에게 건의를 하였다. 3년 넘게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과장을 보며 타당한 요청이라고 생각한 실장은 박의 후임자로 권 계장을 지정해 주었다.   
   

 마일리지 정산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처음에는 비행기 탑승 고객 포인트를 적립하고 쌓이면 나중에 그 포인트로 무료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업무에서 출발하였다.

 지금은 은행, 보험, 카드, 증권회사에서 동일한 고객이 사용하는 실적을 합산하기도 하고, 여러 다양한 제휴처, 예를 들면 면세점이나 호텔 등에서 포인트를 모아 오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자연적으로 일의 가짓수가 엄청 늘어나 있고 복잡하기도 했다. 결국, 잘해야 본전이고 아무런 표도 안 나는 반면, 정산에 오류가 발견될 시에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감사부서에서 양 옆으로 긴 칼을 차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와 조사 및 징계를 한다.

 다행히, 전임자 박 과장이 업무가 안정될 때까지 계속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고, 권 계장 밑에 동일 업무만 3년을 넘게 하고 있는 최 주임이라는 계약직 직원이 받쳐주고 있어 실장의 결정이 그나마 쉬웠다.

 권 계장 또한 머리 회전수가 아주 빠른 직원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자기 일에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라 처음 맡은 업무는 순항을 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계장이 가져온 서류에 결재를 하던 허 실장은 그날따라 많은 오류를 발견하고 그를 불러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그는 수정된 자료를 상사에게 제출하고, 그 옆에 앉아 제출된 서류에 대해 설명을 하다 또 다른 오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같은 실수를 한차례 더 반복했다.

 허 실장은 원래 부하직원들에게 그리 모진 사람이 아니다. 흔히, 덕장德長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형이다. 그런 실장도 동일한 실수를 수차례나 반복하는 계장에게 마침내 화를 내고 말았다. 

 “권 계장, 왜 이래? 한두 번도 아니고 같은 실수를... 좀,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와!”
 드디어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다시 조치하고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무런 변명 없이 쿨하게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실장은

 ‘내가 너무했나! 그래도 신입사원인데... 깨끗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저 친구에게 내가 심한 것 같네...’
 하고 약간의 자책을 하고 있을 무렵에 갑자기 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최명희 주임! 최 주임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모든 서류를 가져와 보세요.”

 라며 신입 권 계장이 아주 낮은 저음에 으스스한 목소리로 최 주임을 호출했다. 그리고는, 서류 하나하나를 넘겨가며 그녀에게 일을 왜 그따위로 밖에 못하냐는 둥, 서류작성이 초보자만도 못하다는 둥,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부서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고 있었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호된 질책을 들은 최 주임은 얼굴이 빨개지고 울음이 가득한 눈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부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실장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리둥절했다.     

 똑같은 현상은 다음 달에도 반복된다.  
    

 결재서류에 오류를 지적받은 권 계장은 야단치는 자기 상사에게 지적하신 말씀이 모두 옳다,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 부족한 자기가 각성해서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말하며 진심으로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돌아간다.

 그리곤, 잠시 후에 자기 지휘 하에 있는 최 주임을 호출하여 자기가 받았다고 생각하는 질책의 열 배 이상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흥분하여 부서 공기를 살벌하게 만들었다.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자, 실장이 계장을 호출하는 순간부터 최 주임은 거의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하며 불안에 떨었다.

 다른 모든 직원들도 고개를 숙이면서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숨죽이며 주의를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실장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권 계장을 혼내는 순간부터 부서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 버리고, 갑자기 그렇게 만든 모든 책임이 자기한테 되돌아오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거 참! 어이가 없네.... 그럼 결국 모든 분란의 책임이 나한테 있는 거네!’

 얼마 후, 실장은 권 계장이 올린 지난달 마일리지 정산 보고서를 검토하다 숫자 오류를 발견했다. 지난달 지적했던 바로 그 항목에서 또다시 똑같은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결제 기안서를 한참이나 들여다본 후에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척추를 지나 목덜미 뒤를 거쳐 머릿속으로부터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권 계장, 이리 와 봐!”
 라고 신경질이 묻어나는 투로 그를 불렀다. 계장이 옆에 앉았다. 부서 직원들은 역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허 실장은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를 향해,

 “권 계장, 신입사원으로 과장이 하던 마일리지 정산하기 쉽지 않지. 고생이 많아. 모두 잘했는데, 오류가 하나 있는 것 같아. 여기야. 이것만 고치면 모든 게 완벽해.”

 하면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친절하고, 세세하게 오류를 설명해 주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자리에 돌아 간 계장은 역시 최 주임을 부르고는 자기가 조금 전에 실장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톤으로 부드럽게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최 주임을 비롯한 부서 직원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부서 분위기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원은 실장이 아니라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권 계장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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