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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pr 30.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4

 허 실장이 처음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무지하게 덩치가 크셨던 S부장이 6시에 퇴근하면서 남기는 멘트는 대게 비슷했다.

 “나 먼저 갈게. 수고들 해요”

 그리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약간 시차를 두고 과장이 나가고, 뒤이어 대리님(그 당시 대리는 인사권과 결재권도 가진 무서운 권력자였다)께서 주위를 한 번 휘~이 둘러보고 분위기를 다 잡은 후에 퇴청하셨다.

 끝에는, 미관말직 계장, 주임 나부랭이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스멀스멀 퇴근하던 시절이었다.

 가끔, 평소에 그토록 호탕하던 S부장이 심술이라도 날 경우에는, 퇴근하면서 직원들을 몹시 심란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을 떠나면서,  
    

 “나,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는데, 사무실에 다시 들어올지도 몰라!”     


 ‘사무실에 다시 들어올지도 몰라!


 S부장님이 남기신 이 마지막 멘트에 과장과 대리는 혼란에 빠졌다. 사무실로 다시 온다는 것인지, 안 온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불확실성보다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게 없다. 두 분은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럼 우리는 언제 퇴근해야 하나?

그냥 먼저 갈까?

그럴 수는 없다. 그해 초에 S부장이 실제로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모두 일찍 퇴근해 버린 모습을 보고 노발대발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과장과 대리는 그 ‘만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S부장이 나간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중세기나 다름없던 그런 암흑기를 거쳐, 허 실장이 중간 간부인 차장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밑에 직원들이 눈치를 보면서 먼저 퇴근하겠다며 일어서더니,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대놓고 아무 말도 없이 퇴근해 버리는 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옛 추억을 되새기기에는 시대가 너무 변해 버린 것이다. 혼자 남아 빈 사무실을 보며 한탄했다.

‘승진하고 직급 올라가면, 편해질 줄 알았더니만... 어째 갈수록 고생길만 훤하고....’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좋은 시절을 보낸 예전 S부장님이 떠 올려졌다.  

    


 
요즈음에는, 아예 오후 6시면 컴퓨터는 자동으로 꺼지고 직원들 모두 퇴근한다.

 하지만 소위 간부라는 실장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을 두고서 직원들과 함께 아무 근심 없이 퇴근할 수는 없다. 오히려, 회사 매출이 줄었다며 위기감이 감돌고 있어, 마케팅을 담당하는 허 실장 입장에서는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된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뭐라도 해야 하는 심정이다.

 토요일 오후, 그는 투덜대는 아내 잔소리를 뒤로 하고 사무실에 나와 여느 때와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직원들이 올린 결재서류를 하나씩 검토한 후 완료 버튼을 누른다. 혹시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면서 해당 직원과 통화 후 이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결재 버튼을 누른다.

 어느덧, 권 계장이 올린 기안문서 차례다. 내용을 훑은 실장은 여러 번 읽었으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메모를 한 후, 그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문자로 양해를 구한 뒤였다.

 답변이 없다.

 이번에는 카톡으로 업무상 잠깐 통화를 원하니 편한 시간에 전화를 달라고 보낸다.

 이번에도 답변이 없다.

 일요일에도 아무런 회신조차 오지 않는다. 결국, 기안서에 결재를 못하고 미결 상태에서 월요일을 맞이한다.      

 ‘무슨 일이 있나? 주말에 짧게 일본 여행이라도 간 건가?’   
  

 월요일 아침, 실장은 그를 불렀다.

 “권 계장, 자네는 왜 문자도 보내고 카톡도 넣었는데 답변이 없나?”

 “죄송합니다. 실장님. 제가 주말에는 일부러 휴대폰을 보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거나 책을 읽으러 가서요. 그리고 일요일 밤에야 실장님께서 문자와 전화를 넣으신 걸 알았는데, 밤늦게 전화드리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아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권 계장 답변에 그는 고개를 끄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주에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되었다. 역시,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가 난 실장은 월요일이 되자마자 그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말했다. 

 “권 계장, 토요일, 일요일에 사생활을 침해할 생각은 없는데... 그럼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는 나는 바보냐?

 전화나 카톡은 받아야 할 거 아냐?

 그 정도 성의도 없어?

 그 정도로 회사에 애사심이 없냐고?

 최소한 주말에 회사 나와 일하는 실장을 생각하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그는 말하다 보니 더욱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졌다. 그때마다 권 계장은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지만, 똑같은 현상은 반복되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오후 퇴근 무렵, 

 실장이 결재함에 들어가 보니, 평일에 미결재된 서류가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주말에 처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우스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며 눈으로 대충 결재할 업무량을 가늠해 보던 그는, 권 계장 기안서가 3개나 되는 것을 보았다.

 시계를 보니, 5시 50분이다.

 6시에 팀원들 컴퓨터는 자동으로 오프 될 예정이다. 계장을 쳐다보니, 그분 얼굴에는 이미 주말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다.

‘분명히 주말에는 저 인간이 내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월요일부터는 마케팅 분기 실적 분석과 보고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결 서류는 이번 주말에 나와 반드시 처리를 완료해야 한다. 어쩌지, 저 인간이 또 전화를 받지 않으면...’

 갑자기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

                          .

                          .

                          .

 
결국,

 “권 계장, 내가 이번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 자네가 올린 기안서를 결재할 건데,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전화를 할게. 자! 우리 시간을 미리 정하자고. 내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 어때? 가능해? 그때 꼭 좀 전화를 받아줘, 꼭, 알았지?”
   

 어느새, 실장은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는 계장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대라면 통화가 가능할 것 같다는 부하 직원의 답변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감사의 한 마디를 전해주었다.

 “고마워, T. G. I. F”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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