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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02.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5

“실장님 오셨습니까?”

 직원들과 한참을 이야기하던 박 과장이 갑자기 뒤돌아서서 허 실장을 향해 인사를 한다. 실장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가 가서 앉는다. 이 모습을 본 나머지 직원들은 경악한다.

 ‘박 과장님은 뒤에도 눈이 달려있나?’

 상황은 이러했다.     

 지난주에 끝난, 인사 평가를 두고 말이 많았다. 항상 그렇지만 내가 S 또는 A 등급을 받으면 공정한 평가지만, C 또는 D등급을 받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박 과장이 오늘 흥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실장으로부터 A등급을 받았다. A등급은 상위 10%만 받을 수 있는 우수등급이다. 참으로,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차장 승진에 목을 매달고 있는 박은 자신이 한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S등급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부아가 난 것이다.

 그래서 박 과장은 서운한 등급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불만의 무리들을 모아 한바탕 실장 성토대회를 열면서 평가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에 모여 있던 다른 직원들은 실장이 출입문에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박 과장 말에 귀를 기울이던 중, 갑자기 뒤에서 오는 실장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동안 상사 욕을 하던 과장이 180도 뒤를 휙 돌아 서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아부 근성! 저 촉(안테나)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타고난 것이다.’   
  

 그렇듯, 촉이 뛰어난 박 과장이 승진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음에도 차장 승진에서 탈락되었다. 실장도 여기저기에 손을 쓰며 노력했으나, 박 과장 자신의 과거 행적이 발목을 잡았다.

 자기 일만 챙기고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동료들 평가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결국, 본부에서는 다른 과장 2명이 승진하고 그는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다음 날, 실장은 승진에서 탈락된 박 과장을 위로하기 위해 본인이 저녁을 사겠다며 조용한 식당에 마케팅 기획팀 직원들을 모았다.

  마침, 그날은 본부장이 다른 실장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술자리를 하는 도중, 실장은 계속되는 본부장 호출 카톡을 견디지 못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호랑이가 없는 굴에는 여우가 왕인 법.
갑자기 박 과장이 왕이 되었다. 가뜩이나 술도 한 잔 들어갔겠다, 얼결에 임금이 된 그는 점점 폭군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더니, 황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부하 직원 승진에는 하등의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승진에만 눈이 벌게 가지고 돌아다닌다.”,

 “내가 자기한테 몇 년 동안 그렇게 헌신을 했는데 이럴 수 있냐? “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비난의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영 미적지근.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약간만 끄덕일 뿐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분위기를 탐지한 박 과장이 동조세력을 찾았다.

 어제, 업무오류로 실장한테 한 소리를 들었던 권 계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마치 백 년 동지처럼 따듯하게 그에게 접근해 당신도 그동안 당한 게 얼마냐면서 한마디 하라고 부추긴다. 침묵을 지키던 권 계장이 박 과장의 계속된 채근에 마지못해 일어선다.

 모두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 실장에게 당한 그도 역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두 궁금해했다.

 그는 짧게 툭 뱉었다

 제가 아는우리 실장님은 그런 분이 절대 아닙니다.”    
 

 ‘휘이익!’  

 일순一瞬,
 술자리를 휘어감은 황량하고 썰렁한 분위기. 박 과장은 한순간에 완전히 바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자신의 천적天敵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설쳐댄 그의 잘못이었다.

 평소에도 까칠했던 권 계장은 이렇듯 가엷은 박 과장을 일 타打에 날려 보내고 그때부터

까칠 계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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