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장동 May 04. 2020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6

 허 실장은 퇴근 무렵 갑자기 술이 고파졌다.
 박 과장에게, 

 ‘간단히 번개 가능? 맥주 한 잔?’

 이라고 카톡을 던져 보았으나, 오늘 밤 집안에 제사가 있어 바삐 가 보아야 한다는 답톡을 받았다.

 ‘흥, 저 인간은 맥주 이야기만 나오면 집안에 없던 행사도 생기는구나! 그러니까 네가 승진이 안 되는 거야, 인간아’


 기분이 상한 그가 부서를 한 번 죽 훑을 무렵,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까칠 계장이 눈에 띈다.

 ‘저 인간이라도 데리고 가서, 오늘 한 잔 하고 들어가야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권 계장, 어디 다녀오나?”

“네, 신입사원 선후배 연결 프로그램(mentor-mentee program)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참, 그렇지. 새로 신입사원이 들어왔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 권 계장도 드디어 후배 사원을 받게 되었다. 기어이, 그를 구워삶아 그가 자주 다니는 맥주 바bar로 향했다. 둘이서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시던 중, 계장이 한마디 한다.

 “실장님, 본부 신입사원들과 자리 한번 마련할까요? 본부에 제가 담당하는  mentee가 다섯 명입니다. 직장 선배로서 조언도 해 주시고... 겸사겸사 좋은 자리가 될 거 같습니다.” 

      


 
권 계장은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어느 날, 그는 허 실장을 모시고 지난달 마시던 맥주 바bar에 도착했다. 와 보니, 미리 그가 소집한 듯한 후배 여직원 두 명과 남직원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모두 밝은 표정에 패기 넘치고, 예쁘고, 건강해 보였다. 하루 종일 회사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실장으로서는 아주 반가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즐거운 술잔이 오가고 한참을 웃음으로 시간이 가는 사이에 실장은 아주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입사 연도가 일 년밖에 차이가 안 나는 선배사원 권 계장 앞에서 남녀 신입사원 다섯 명 모두 설설 기고도 모자라 어려워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가 술자리에서 눈짓이나 손짓으로 지시하면 그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즉시즉시 그의 지시대로 알바 부르고, 안주 추가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실장 앞에서 펼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요즈음 신입사원들은 자기 개성도 강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저 인간이 무슨 요술을 부렸기에 저 팔팔한 신입들이 절절맬까?’

 갑자기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계장님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때 즈음, 갑자기 까칠 계장이,     

 “실장님, 우리 신입사원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주시죠!”

 그러자, 그들 모두 허 실장을 쳐다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이에, 힘을 얻은 실장은 그동안의 직장생활 경험, 고사 성어, 짧은 토막 영어를 적당히 버무려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과유불급!

 다 좋은 말이었는데, 너무 길었다.
그들 눈에 서서히 피로감이 나타나고,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눈치 빠른 권 계장은,

 “실장님, 모두 건배 한 번 하시죠...”

 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상사의 터진 봇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술도 한 잔 들어간 그의 입에서는 직장생활 90%는 신입사원 때 승부가 난다는 둥, 워라벨이 중요한 게 아니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죽기를 각오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둥, 심지어는 회사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기대하기 전에 여러분이 회사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말까지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분위기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상한 방향으로 계속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모두 웃으며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했다. 당황한 권 계장은 잠시도 쉬지 않던 상사의 입이 맥주를 마시려고 잠시 멈추어진 그 빈틈을 잽싸게 비집고 들어갔다.

 “실장님! 우리 마케팅 본부 신입 직원들에게 마케팅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받아 주시죠.”

 “마케팅? 질문? 응.... 그럴까. 내가 인사말이 너무 길었나? 자! 지금부터 우리 회사 마케팅에 대해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질문해 보세요.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우리 회사에서는 최고의 마케팅 가이guy입니다. 마케팅 가이.”

 스스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허 실장은 편하게 질문하라고 권하였으나, 이미 일장연설에 질렸는지, 실망했는지, 아무도 나서려 하질 않는다.

 1초가 하루처럼 느껴지며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까칠 계장이 마케팅관리팀 신입 여직원을 슬쩍 쳐다본다.

 엄한 선배로부터 눈짓을 받은 그 여직원은 우물쭈물하더니,

 “실장님, 조금 전에 실장님이 우리 회사 최고의 마케팅 가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에이. 그냥 농담으로 드린 말씀인데... 사실 우리 회사에서 나보다 능력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농담입니다. 농담!”

 하면서 손사래를 친 자칭 마케팅 전문가는 그래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여러 명의 요청을 받고는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정 그러시다면, 우선,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에서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개념부터....... 그걸 제대로 이해한 후에,......... 그럼 우리 회사에 적용할 마케팅은.......... 따라서 그런 마인드가 자기 머릿속에 확실히 자리....... 그러면 각자는......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회사는 물론 업계에서도......... 따라서 제 결론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가이의 열변에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도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자기 말에 스스로 필feel을 받은 실장님이 흥분하면서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선을 넘고 말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즈음 신입들은 문제가 많아요. 스펙도 화려하고, 우리 때보다 영어실력도 월등하고, 개성도 아주 강한데, 궂은일을 안 하려고 해. 처음부터 뭔가 뽀다구 나는(번듯한) 일만 하려고 하고, 치열한 경쟁으로 입사를 해서 그런지, 벌써부터 승진이나 인사고과를 생각하고, 여차하면 퇴사해 버리고, 사실 회사가 골치가 아파요. 신입으로서 맨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도대체 뭐, 그런 맛이 없어.”

 하면서 갑자기 조언이라는 것이 잔소리 모드로 바뀐다.

 그러더니 그 잔소리 모드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야단치고 훈계하는 위험수위를 넘나들더니 급기야는, ‘내가 옛날 신입사원 시절에는 말이야.’라는 꼰대 멘트에 이르러서야 절정을 이루고 마무리되었다.

그 와중에, 신입사원들은 자기 경험담에 푹 빠져 무아지경을 헤매는 실장과 두 눈을 부라리며 자기들을 감시하는 군기반장 까칠 계장의 눈초리를 피해 계속 동의를 표하는 추임새와 감탄사를 섞으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모두 속으로는,     

 사회에 나와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 계  속 >>

작가의 이전글 [단편] 까칠 계장이 사람 다루는 법 -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