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했다.
"돈은 언제 생겨?"
"돈은 말이야 늘 없는 거야, 학생일 때는 공부하니까 없지. 대학 가면 학자금 대출 갚아야 하니까 없지. 직장 들어가면 저축해서 좀 생기는 것은 또 결혼하면 은행 대출해서 집사니까 없어져. 그래서 또 없어. 아이들 생기면 뒷바라지한다고 또 없어. 은퇴해서 좀 나으려나 했는데 아이들 결혼한다고 해서 또 없어져......"
참 공감이 가는 말이다.
결혼해서 그동안 아내와 나는 참 열심히 그리고 알뜰하게 살았지만 늘 돈이 없었다. 돈이 부족해서 힘들면 아내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아니 우리가 무슨 사치를 했거나 뭐 사업을 하다 말아먹었거나 주식에 몰빵을 해서 다 털렸거나 그런 것도 아닌 게 말이야....."
물론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리고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것도 역시 아니지만 돈은 많은 것들을 싶고 간단하게 해결해 주는 것이 많다. 돈이 좀 많으면 원하는 그리고 좋은 동네에 집을 사서 살 수 있고, 돈이 좀 많으면 부모님께 용돈도 넉넉하게 주면서 효도도 하고, 또 돈이 많으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할 때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의 유년 시절을 기억해 보면 나의 부모님도 넉넉하지 못했다. 시골 공무원으로 일하셨던 아버지의 월급은 안 봐도 뻔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까지도 미나리를 키워서 장에다 파시는 것 때문에 늘 바쁘셨다. 아버지 혼자 버는 것으로 온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부모님들이 저축을 엄청하셨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거절함이 없이 많이 해 주시는 편이셨다. 특히 고등학교를 올라가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와 동생의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도 늘 넉넉히 지원해 주셨다. 휴학을 해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해도 빨리 졸업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극구 말리시면서 그래도 우리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막상 내가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딱 그때의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뼈저리게 느껴졌다. 매달 무조건 나가야 하는 지출은 물론이고 그 매달 매달마다 항상 무슨 일 생겨서 지출이 더 생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생활비를 관리하는 아내는 늘 머리가 아팠을 텐데도 한 번도 나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았다. 가끔 그 정도가 심하게 되면 한꺼번에 화산처럼 터져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게 된다.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내 능력의 한계를 자책하면서 마음이 쪼그라듬을 느끼곤 한다.
그나마 아이들이 어리고 아내와 나도 지금보다는 좀 더 젊었을 때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크지는 않았다. 물론 그때도 늘 부족했었다. 당시에는 외벌이였기에 더 당연했다. 단지 아내가 나한테 자세한 내역을 일일이 시시콜콜 이야기를 안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억으로 보면 아이들에게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고 친구를 만나도 지인을 만나도 하물면 가족들을 만나도 늘 아낌없이 돈을 쓰고 배풀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후회가 된다. 좀 더 생각해 보고 알뜰하게 돈을 사용할 것을 그랬나 싶다. 대학에서 이과를 나오고 쭉 IT 쪽으로만 일을 해온 나는 당시에는 경제관념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월급으로 받은 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의 투자 지식도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에 투자 콘텐츠가 넘쳐나던 시기도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늘 월급에만 의지하고 사는 인생이 돼버렸다.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지출이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아내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돈은 부족했다. 언젠가부터는 모든 소비에 두려움이 생겼다. 소비를 해야 할 때면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살까를 수십 번도 더 고민하고 되도록이면 질보다는 양으로 가격이 가장 최우선이 돼버렸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와 식사자리의 회수도 일부러 점점 줄이게 되었고 이제는 거의 없어지고 한두 개 정도만 남았다. 그마저도 매번 참석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소수 모임일 경우 그리고 내가 가장 연장자일 경우에는 커피값이나 밥값을 내가 계산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와하고 말이다.
주기적으로 날아오는 대박 세일 관련 마케팅 이메일과 문자를 보면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나와는 이제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 그런 이메일과 문자에 구독 중지를 하거나 아니면 바로 지워버리기 일쑤다. 집에 문제가 생겨서 고쳐야 하거나 사람을 불러야 한다면 꼭 비교 견적을 몇 번을 한다. 예전에는 가격보다는 가장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것들 선택하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은 없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주말에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은 나의 몫이 되어 버렸다. 몇 번 장을 보면서 같은 제품이 여러 개 있을 경우는 무조건 가격을 기준으로 물건을 고른다. 세일 코너를 제일 먼저 검색하고 난 후에야 다른 섹션으로 이동해서 장을 보는 것은 이제 루틴이 되어버렸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어느듯 이 부족함으로 인한 달라진 생활 패턴이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산다. 돈은 여전히 그저 삶의 수단일 뿐이지 그것의 적고 많음으로 나의 행복 지수를 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한 푼 두 푼 아끼고 절약해서 사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그렇게 아껴서 저축을 해보니까 알겠더라 돈이 정말 모인다는 것을 말이다.
돈이 부족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돈이 부족한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 내 인생의 다른 곳에도 영향을 주지 않기를 원하다. 가령 사람을 만나면 돈보다는 그 사람과의 만남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부족하지만 늘 당당해지고 싶다. 솔직히 가끔씩은 아이들에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자라고 눈치가 있어서 내가 티를 내면 금방이라도 알아채고 수상한 반응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한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안다.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돈이 없어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은 티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티가 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인다. 예전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밨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결코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환경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기 때문에 감히 내가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 최근에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종종 들었고 이제는 나도 가끔은 그런 티를 내곤 한다. 그런 상항에 직접 와 보니 알겠더라.
최근 몇 년간 아내와 나는 그래도 투자도 하게 되었고 그쪽으로 공부도 많이 하고 있으며 점점 더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자산을 늘려가는 중이다. 사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30년 정도는 더 산다고 가정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도 자기 자산의 대부분을 60세 이후에 만든 것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작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게 마음 편하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자고 늘 말한다. 보다 일찍 경제관념을 가르쳐 주고 인식하게 끔 해주고 그래서 가능하면 돈이 없어서 자기들 인생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늘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나와 아내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이런 교육들을 우리 부모님에게 제대로 받고 자라진 못했다. 그저 "성실하게 살아라",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이런 가르침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아내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문득 말했다.
"여보, 우리 지금 좀 넉넉하지 못해서 가난하지만 그래도 마음까지 가난하진 말자 알았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