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견딘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을 숨기고 역행하는 과정이다. 말 그대로 순리를 거슬리는 행동이다. 무엇이 되었던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강물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두 번 숨기는 감정들은 나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자주 하면 병이 생기기 쉬워진다. 마음이 슬퍼지게 된다.
마음이 슬프니 눈물이 나온다. 물론 눈물은 기쁜 일로도 나오지만 슬퍼서 인간이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도 사람이 나약해지거나 위로가 필요하거나 무언가에 대한 깊은 후회에 대한 반응으로 눈물이 주르르 나올 때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결국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눈물을 보이는 이유가 너무나 아픈 마음의 병을 겪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눈물을 흘리고 나면 더 슬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음이 청소된 것 같이 상쾌하고 후련하다. 아마도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은 다 이 비슷한 감정들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 뇌의 자연스러운 요청을 우리가 참거나 견디거나 숨기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동안 이런 반응들을 숨기다가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렇게 시원하지 않다. 그 후로도 답답함은 그래도 남는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참고 견디고 숨기다 보니 마치 딱딱한 딱지가 생겨서 쉽게 나아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참지 말고 그때그때 반응해 줘야 한다.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키우다 보면 참 울 일들이 많아진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까지는 그들 앞에서 우는 것을 참지 않고 그냥 내 보낸다. 왜냐면 아직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겠지 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이 성장하고 자아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는 그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를 못한다. 참고 견디고 숨기고 즉 감정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무시하고 산다. 부모의 슬픔이 또는 눈물이 자식들의 삶에 혹시나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이다. 특히 그 슬픈 일들이 자식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더욱더 그 인내심의 한계치를 늘려간다. 그러다가 결국 마음의 병이 생기고 심하면 그걸로 인해 치명적인 건강 문제가 생기곤 한다.
나는 사실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적어도 둘째 녀석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크게 울었던 기억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결혼해서 신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엄마가 울먹이면서 전화해서 급하게 서울에서 고향으로 가는 차 안에서였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까지 나의 공부를 뒷바라지해 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적이다.
그 두 번의 눈물들은 정말 슬픔에 반응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내 인생에 있어서 눈물을 흘릴 정도의 슬픈 일들은 없었던 것 같다. 첫째 딸과 힘든 시간들을 보낼 때 가끔 슬퍼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오히려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왜냐면 두려움과 걱정이 더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르륵 내리는 눈물은 없었다. 아이보다 더 인생을 많이 산 어른이었지만 내게는 솔직히 그 시간들이 두렵고 무서움이 더 컸다.
첫째에게 그런 것들이 오기 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해서 부모로서 그런 것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고 본질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등등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물음표였으며 이 모든 것들을 모른다는 것 사실에 두렵기만 하고 그래서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상상만 하면서 무서웠다. 오히려 심장이 쪼그라들고 머리가 차가워졌을 뿐 슬픈 감정을 느낄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우선은 첫째 딸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들이 부모의 역할을 잘 못해서 생긴 결과라는 생각과 부끄러움으로 한동안 나 자신을 원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다 보니 첫째 녀석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이와 대화를 하고 조금씩 이해를 하면서 문제는 내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는 걸 알면서 다행히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지났던 것 같다.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우리 식구들 모두에게 참 힘들고 긴 시간이었지만 다 잘 참고 견디며 인내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견뎠던 시간 동안 반응하지 못하고 숨겼던 감정들은 사라지지 못했고 그대로 나의 마음에 쌓였다. 그것을 한참을 지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결국에 나는 슬펐던 거였고 그 감정을 억지로 숨기고 지냈던 거였다. 한참을 지나 한꺼번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물로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의 시작은 둘째 녀석으로부터 여였다.
둘째 아이에게 온 마음의 병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것을 안 순간 첫째 아이와의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시 생각났고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참고 견디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였는지 몰라도 그것들을 또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만으로도 둘째 아이에 대한 동정보다는 오히려 원망의 감정이 더 많았다. 꿈이겠지 그래서 자고 나면 없어질 일이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자고 나면 없어지는 꿈이 아니었다. 정말 꿈이었기를 바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둘째 아이도 첫째 딸과 똑같은 전철을 밟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나서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첫째 아이와 있었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둘째 아이에게도 똑 같이 적용하면 아마도 빨리 치유되고 금방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달리듯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업 앤 다운의 시간들을 다시 보내야만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참아야 했고 또 견뎌내야만 했고 반응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부모이기 때문이었다. 그 긴 시간을 지나면서 나와 나의 아내의 소중한 인생은 상처받았고 무엇인가 내 안에 계속 쌓여만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딸아이가 아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외로운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내가 보였다. 눈물이 났다. 봄에 소리 없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같이 내 볼을 타고 내렸다.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울었던 예전의 그 슬픔의 눈물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불쌍한 내 인생에 대해 내가 해주는 위로의 눈물이었다. 그때 알았다. 부모들은 우는구나. 부모들의 눈물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디고 난 그 끝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엄청난 기운과 에너지를 얻었다. 포기할 것 같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 시작하면 되지라는 긍정의 마음이 올라오곤 했다. 비록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감싸주고 위로해 준 것은 아니고 내가 나에게 받은 위로였지만 강열했다. 그 뒤로도 눈물은 계속되었다. 마치 이제 내 몸은 참고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으니 충분히 반응하겠 노라고 외치 듯이 둘째 아이의 마음의 병이 아래 방향으로 무너지고 그로 인해 나도 무너지고 힘들 때마다 그 눈물들이 나왔다.
둘째 녀석의 마음의 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나의 눈물도 현재 진행형이다. 자식으로 인해 흘리는 부모의 눈물은 애초에 처음부터그 누구에게도 보상받거나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저 부모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눈물이 나서 울고 나면 그 끝에서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부모님들이었다. 나도 우리 부모님들을 이렇게 눈물 흘리게 만든 적이 있었을까? 우리 부모님들도 나 때문에 아니면 내 동생 때문에 마음 아파서 혼자 운 적들이 있을까?
아마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나의 우는 모습을 우리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혼자 감내해 내듯이 나의 부모님들도 똑같았을 것이다. 그저 참고 견디고 했던 일들도 많았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해서 우신적도 많았을 것이다. 한 번도 부모님이 나처럼 혼자서 울었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 자식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혼자 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 작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보게 되었다. 둘째 녀석을 데리고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때쯤엔 둘째 아이도 나도 뭔가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같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났고 둘째 녀석이 잠깐 없는 사이 내 부모님들과 아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얘기를 다 들으신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고 너무 많이 우셨다. 처음이었다. 내 부모가 그것도 내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우시는 것은 태어나서 그때까지 처음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다른 슬픔으로 나오는 눈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신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어른이 아니라 어른 자식으로만 보였고 그 먼 타지에서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들은 슬프고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죄송했다. 나이가 50이 넘어서도 나는 철없이 내 부모에게 위로받기 위해 내 자식일을 감추지 못하고 얘기했고 그로 인해 내 부모님들은 오랜만에 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슬픔의 눈물을 흘리신 것이었다.
아… 내가 무엇을 한 것인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울지 말라고 그만 우시라고만 계속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의 나의 어머니였다면 아마도 그 얘기를 듣고도 내가 없는 어디 구석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추고 참고하기에는 이제는 너무 늙으시고 그렇게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만큼 나이가 드셨다.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그 장면들이 자꾸 생각났다. 반성도 생각도 많이 했다.
부모의 눈물은 무엇일까?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위로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부모님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나는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이 후로 나는 늘 웃는 모습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억지로라도 웃고 그저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 신경 쓰시지 마시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다 안다. 부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