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로 프러덕트 매니저가 팀에 들어왔다. 그냥 여기서 가명으로 제니라고 부르겠다.
그동안 나 혼자서 이런저런 플랫폼 기획을 하면서 너무 정신없이 보냈던 터라 새로운 인력이 충원된다는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제니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미 몇 번의 대화를 해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막상 정식적으로 팀에 합류한다고 하니 느낌이 달랐다. 보통은 인터뷰를 하다 보면 대충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다. 제니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굉장히 정리를 잘하는 친구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게 깔끔했고 직선적이었다. 억지로 무언가를 꾸미려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 점이 나는 참 마음에 들어서 점수를 좋게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니가 다른 후보자들보다 좋았던 것은 그녀로부터는 무언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기획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꽤 힘든 노동이 많이 필요하다. 즉,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의미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야 하고 여러 가지 도전과 이슈 거리들을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기본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제니는 충분히 넘치도록 그런 것을 가지는 듯이 보였다. 그건 단순히 제니가 젊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받았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프로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에서 뛰는 사람들처럼 연봉을 받고 실력에 따라서 대우를 받고 그리고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어야 하고 특히 자신만의 일하는 "way"(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방식이 있다. 무슨 플랫폼을 기획하던지 변하지 않는 그 방식 말이다.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제니는 팀에 합류한 후 처음 한 달 정도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기획 미팅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여러 플랫폼에 대해서 경험하고 여러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것을 그녀에게서 발견했고 그것은 나에게 솔직히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여기서 공유하고자 한다.
한 번은 신규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 미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미팅을 호스트 했으며 나외에 UX designer, 아키텍트, 시니어 매니저, 세일즈 담당자, 제법 많은 인원이 모여서 캐주얼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신규 서비스에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하였다. 이런 기능은 어떤지 저런 기능들을 넣으면 좋겠고 등등 쏟아 내면서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이런 아이디어 회의 (brainstorming session이라고 한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하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회의가 끝나고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그런 경우도 생기게 되므로 회의 진행자의 진행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날도 비슷하게 난상토론이나 중구난방의 의견들의 홍수로 약간은 정신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제니가 갑자기 손을 들어서 질문이 있다고 했다. 다들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죠?"
그 순간 모두가 얼어버렸다.
제니는 회의살에 있었던 모두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끄집어낸 거였다. 우리는 그저 대단한 기능과 럭셔리한 사용자 경험을 마구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제품을 사용할 실제 사용자에게 좋을지 맞을지 아닐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회의 진행을 맡았던 나도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 사용자가 누군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들 머릿속에 알고는 있었고 각자가 생각하는 사용자가 분명히 맞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모두들 그것이(사용자가 누군지 토론하는 것)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맨 먼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했어야 했는데 놓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부랴 부랴 그때부터 신규 서비스를 사용할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시작하고 그러고 나서 그전에 나왔던 아이디어들을 거꾸로 끄집어내어서 실제 사용자들에게 필요한 기능들인지를 필터링했다. 회의가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제니가 두 번째 카운트 블로우를 날렸다.
"그러면 Use cases (사용 사례)가 뭐죠?"
신선했다.
사실 모두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품을 만들고 기획을 할 때 가장 실수하기 쉬운 것이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례를 건너뛰고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거나 남들이 하니까 하거나 그리고 사용자가 아닌 우리가 좋아하는 기획자가 원하는 기능을 넣은 순간들이 있다. 실수다 하지만 자주 하는 실수다.
그 미팅 이후에도 제니는 늘 접근법이 똑같았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리고 사용 사례를 알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도 제니의 일하는 방식일지 모르겠다. 그녀만의 방식말이다.
이 바닥에서 꽤나 오래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들어온 직원으로부터 또 배우고 영감을 받았다.
물론 제니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 모두가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이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 절대로. 항상 내부에는 적당한 빌런들이 있다. 없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경쟁 구도에서 필연적인 관계다.
가끔은 우리가 고객이나 사용자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들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B2B 서비스의 경우는 더 그렇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될 수 도 있다. 운이 좋아서 우리가 정의한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을 실제 사용자가 너무 좋아하고 만족하면 성공적이지만 말 그대로 그럴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 이다.
특히 회사에서 오래 일한 시니어 세일즈나 매니저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들이 언제든지 다 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용자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는 사용 사례들이 정답이라고 알고 있으면서 쉽게 말하면 "나를 따르라"라는 식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교과서에 배운 대로 적용하는 것이 맞기도 하지만 가끔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의 접근 방식은 훌륭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계속 그런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 나는 적극적으로 도와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