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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pr 02. 2024

얘, 쟤 닮았죠?

1.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6)

“봤죠, 봤죠? 제가 뭐랬어요. 반응 있을 거라니까.”


홍보지를 유심히 읽고 떠난 이진우를 멀찍이서 관찰하던 이로미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진태하가 퉁명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서 일하자, 응?”

“저 할 일 다 하고 있거든요?”


그 말에는 딱히 반박할 수가 없던 진태하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고 고개를 휘둘러 가게 안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진태하의 의도를 진작에 눈치챈 이로미가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내뱉었다.


“사장님이 애지중지하시는 명품 커피잔 컬렉션 선반 먼지 애저녁에 다 닦아 뒀구요, 로스팅한 원두도 오늘치 판매 분량 다 옮겨 놨어요. 그라인딩도 해 놨구요. 베이킹 제품은 반죽 다 준비해 뒀으니 그때그때 구워서 빼놓으면 그만이고. 입고 일정 정리는 원래 사장님 몫이잖아요. 또 뭐 빠졌어요?”

“응. 겸손.”

“아...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사장님하고 일하다 보니 닮아서 그래요.”

“너는 어째 말 한마디를 지는 법이 없냐.”

“사장님한테만 그래요.”

“내가 직원 하나 아주 제대로 뽑았지, 응...”

“당연하죠. 사장님 눈썰미가 어디 보통 눈썰미인가.”


이로미가 신이 나서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진태하가 도끼눈을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나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커피를 내리는 그 움직임에는 일견 단호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단호함의 근원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진태하의 가차 없는 교육과 훈련이었다.


“조금 쓸만해졌다, 너?”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저기,”


두 사람이 5분을 못 넘기고 또다시 티격태격하는데 조심스럽게 끼어드는 음성이 있었다.


“네, 손님! 어... 이거 굳이 안 들고 오셔도 되는데, 저희 카페에서는 그냥 자리에 놓고 나오셔도 돼요.”


흔히 볼 수 있는 논슬립 쟁반이 아닌 제법 묵직한 목쟁반을 받쳐 들고 카운터 앞까지 가져온 윤소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맛있는 스콘까지 대접받아 놓고 그냥 나가기가 민망하더라고요.”


고맙습니다, 하고 살포시 쟁반을 받아 들던 이로미가 갑자기 어어어, 하고 탄성을 올렸다. 예의 없이 손님을 힐끗거리며 괴상한 소리나 내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뭐라고 할 셈으로 윤소은과 이로미 쪽으로 몸을 돌린 진태하가 눈을 끔뻑거렸다.


“어어?”


진태하의 입에서도 여지없이 빠져나온 ‘나 이거 아는데?’라는 듯한 소리를 들은 이로미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쵸? 닮았죠? 비슷해!”

“그러게, 닮았다.”

“뭐가요?”


두 사람의 공통된 반응이 재미났는지 윤소은이 자못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제야 자신도 만만찮은 결례를 저질렀음을 자각한 진태하가 난감하게 입을 다문 동시에 이로미가 빠르게 대답했다.


“손님이 메고 계신 니트 가방의 토끼요. 저희 건너 공방 도예가 선생님이 만드시는 인형이랑 너무 닮았어요.”

“네?”


이로미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윤소은이 의아해하자 진태하가 얼른 끼어들어 부연했다.


“도자공예 쪽 창작을 하시는 분이세요. 그냥 평범한 남자분이신데, 작품은 굉장히 동화적이고 예쁘거든요. 아―!”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긴 진태하가 얼른 카운터 뒤편의 선반 한 켠으로 손을 뻗었다. 진태하의 음성에 사뭇 들뜬 기색이 배어들었기에 윤소은은 흥미가 동한 얼굴로 그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어쩜, 세상에.”

“엄청나죠?”


도자기 티포트를 조심조심 꺼내어 카운터에 올려놓은 진태하가 허리를 쭉 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자신의 작품을 내놓은 본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둥그런 포트의 바닥부터 올라오는 잔잔한 초록빛은 주둥이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옅어져서 뚜껑에 이르면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도 다람쥐인 듯한 귀여운 동물이 방실거리며 생두 주머니를 끌어안고 있는 장식이 하단에 붙어 있었다. 뚜껑 위에 엎드린 작은 토끼는 뭐가 답답한지 뚜껑을 팡팡 두드리는 것 같은 자세였다. 가만히 그 포트를 바라보던 윤소은이 마침내 와아, 하고 나지막이 감탄했다.


“네, 이렇게 귀여운 건 처음 봐요. 정말 이런 걸 직접 만드세요? 너무 대단하시다.”

“그렇죠. 공방에 가 보시면 더 많아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무슨 동화의 숲 같다니까요.”

“동화의 숲.”


가만히 그 말을 따라 되뇌던 윤소은이 무심결에 티포트의 뚜껑에 올라앉은 토끼를 쓰다듬다 말고 흠칫 놀라며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에요. 그럴 만도 하죠. 저도 가끔 쓰다듬어주고 싶어지거든요. 왠지 기운 내라고 하고 싶어지는 포즈잖아요.”

“정말 그러네요.”


진태하와 윤소은을 번갈아 흘끔거리던 이로미가 이때다 싶었는지 잽싸게 끼어들었다.


“저기, 손님. 그러시면 여기 수업 한 번 등록해 보시면 어떨까요?”


숙련된 영업 사원 같은 이로미의 참견에 진태하가 슬쩍 눈살을 찌푸리는 듯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가 금방 가세했다.


“곧 클래스 오픈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니까요. 혹시 관심 있으시면 일단 이거 한 장 가져가 보세요.”


길에서 나눠주는 광고 전단조차도 외면하지 못하고 받아주는 윤소은이 그런 권유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이로미가 건네주는 홍보물을 받아본 윤소은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 이거 아까 붙이시던 건가요, 혹시?”

“넵! 지금 수강생 모집 중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수업으로 계획하고 계시니까 직장 다니시는 분들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참여하실 수 있으세요!”

“그런가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윤소은이 홍보물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그녀가 가볍게 목례하고 가게를 나서자 티포트를 조심조심 다시 선반에 옮겨 놓던 진태하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근데, 형님이 웬일이실까. 그렇게 빼시더니 언제 구체적인 일정을 다 잡아 놓으셨나.”

“원래 클래스는 그렇게들 스케줄 잡아요. 최쌤이라고 뭐 다르게 하시겠어요.”

“뭐? 야, 너 설마.”

“아니, 상세 스케줄이야 당연히 쌤이 결정하실 일이고, 저는 큰 틀만 잡아드리는 거죠.”


진태하가 이마를 짚었다.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사고 치는 자식 뒤따라다니며 사죄하러 다닐 일 없게 혼자 살았더니, 일 저지르는 게 특기인 직원 쫓아다니며 사죄하러 다니는 인생이 됐네...”

“인생이 원래 그래요, 사장님.”

“말은 청산유수야, 응?”

“뭘 새삼.” 


이로미가 경망스러운 휘파람을 짧게 불어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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