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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r 29. 2024

궁금하시면 문의주세요!

1.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5)

“어서 오세요, 에스프레시브씌- 입니다!”


윤소은에게는 어느새 낯이 익은 싹싹한 직원이 풍경이 울리자마자 경쾌하게 인사를 던져왔다. 지난번에도 카페 이름을 장난스럽게 발음하다가 사장에게 한 소리를 듣는 것 같았는데, 그 장난기는 여간해서는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카페 사장이 바리스타도 겸하고 있는 가게인지라,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던 사장이 듣고 있던 윤소은마저 따끔한 기분이 들 정도로 직원의 이름을 경고하듯 불렀는데도 직원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항상 드시는 걸로 드릴까요?”


윤소은이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뜬 채 방싯거리는 직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여기 그렇게 자주 안 오는데… 뭘 주문하는지를 아세요?”


질문인지, 확인인지 모를 말을 던지며 윤소은이 직원의 가슴께를 흘긋 보았다. 은색으로 반짝 빛나는 명찰에 새겨진 이로미, 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 그럼요. 항상 오늘의 추천 원두로 만든 라떼 주문하시잖아요. 시럽은 절대 넣지 않으시고. 맞죠?”

“… 네, 맞아요. 놀랍네요.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오는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세요?”

“저희 사장님 철칙이기도 하지만요, 저도 그런 게 좋아서요. 인간적이잖아요.”


원체 명랑한 성격인지, 또 방싯방싯 웃으며 이로미가 결제가 끝난 카드를 내밀었다.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앉아 계세요!”


고개를 끄덕인 윤소은이 가방끈을 어깨 위로 살짝 추슬러 올리며 그녀가 좋아하는 자리를 찾아갔다. 다시금 슬쩍 뒤돌아보자 그새 또 카페 사장과 이로미는 뭐라고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투닥거리고 있었다.


“… 다른 거 드시고 싶으실 수도 있잖아, 그걸 그렇게 배려도 없이 네 맘대로 강요한 주문을 받냐!”

“사장님 눈엔 제가 아주 그냥 애 같죠? 아무려면 그런 눈치도 없을까 봐요? 낼모레 서른인데?”

“너는 낼모레 육십이어도 눈치가 없을 애잖아.”

“아무려면 사장님만큼 없을까 봐서.”

“야, 이로미!”

“손님 불편해하시면 다 사장님 탓. 알죠?”


원체 신경이 예민한 편인 데다 그들의 투닥거림이 재미있었던 탓에 바짝 귀를 기울여 듣던 윤소은은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삼키지 못한 웃음소리를 머금고 말았다. 윤소은의 웃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카페 사장과 이로미의 말싸움은 거짓말처럼 멎었다. 몇 분 뒤 윤소은은 늘 그랬듯 포피 동물병원에 한눈을 팔기 시작했고, 유난히 발랄한 비숑 프리제 한 마리를 홀린 듯 바라보느라 제 앞에 라떼잔이 놓인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손님, 라떼 나왔습니다.”


깜짝 놀란 윤소은이 화드득 고개를 들었다. 이로미일 줄 알았는데 사장이었다.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조금 전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건, 사과의 뜻으로 드리는 서비스니까 사양하지 말고 드세요.”


손가락 네 개 정도를 합친 크기의 스콘이었다. 윤소은이 망설이고 있으려니 카페 사장이 힘주어 말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사실, 저희 직원의 야심작이거든요.”


카운터 뒤에서 무슨 문서 뭉치를 들고 바지런히 움직이던 이로미가 그 말을 들었는지 귀염성 있는 브이를 그려 보이는 바람에 윤소은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얼핏 듣자 하니 서른 언저리라고 했는데, 나이답지 않은 천진한 귀여움이 샘날 정도로 부러웠다.


“네,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


윤소은이 가볍게 스콘을 입에 물었다. 놀랄 정도로 상큼한 크랜베리의 맛이, 화이트 초콜릿 칩과 어우러져서 근사한 마리아주를 만들었다. 평가가 궁금했는지 창가에 뭔가를 붙이고 있던 이로미가 그녀를 흘끔거리는 기색이어서, 윤소은은 오랫동안 움직여 본 기억이 없는 입술 주변 근육을 크게 움직여 활짝 웃어주었다. 제 얼굴이 행복감으로 가득 물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창에 A4 출력물을 붙이던 이로미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


끼익―

유난히 거슬리는 긁히는 소리와 함께 길 건너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멈추었다. 바퀴 앞에 뭐가 달려들기라도 한 건가, 하며 지나가던 사람이 흘깃 자전거 앞을 힐끔거릴 정도의 급정거였다. 이진우는 건너편 카페 유리창에 뭔가를 붙이다 말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밝게 웃는 직원을 다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렇게 그림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신메뉴 출시 광고라도 붙인 것일까. 이진우는 조금 전 제 시선을 온통 붙들었던 직원이 붙여둔 출력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슬슬 길을 건너 가까이 가 보니 뜻밖에도 그것은 카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수업의 홍보물이었다. 그 이름이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던 이진우는 이내 그것이 카페 바로 근처의 공방임을 떠올렸다.


홍보지에는 수업 등록 방법과 구체적인 커리큘럼 같은 것은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저 문의는 <공방, 숨> 또는 <카페 Espressive-C>로 해 달라는 말만 달랑 적혀 있을 뿐이었다. 손글씨를 따서 그래픽화 한 것인지, 폰트인지는 알 수 없는 장식적인 서체로 쓰인 홍보지는 아마도 그 직원이 직접 만든 것 같았다. 조금 전 이진우가 홀린 듯 보았던 웃는 얼굴이, 한 줄의 광고 문구에서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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