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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r 22. 2024

생긴 대로 하는 거, 그게 비결

1.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3)

진태하가 결코 작은 키가 아님에도 이로미를 부축해 일으키며 비틀거렸다. 최현욱이 빠르게 반대편을 부축하자 진태하가 감사를 표했다.


“우리가 같이 도와드리면 되니까 진 사장님하고 최 선생님은 먼저들 들어가세요.”


강경희가 나섰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최현욱 옆으로 다가선 이윤도가 걱정 말라는 듯 여유롭게 말했다.


“우리 에이미 씨하고 같은 아파트 살잖아. 굳이 태하 씨하고 현욱 씨가 움직일 필요 있나. 어차피 목적지가 거기인 사람이 둘이 더 있는데.”


강경희와 이윤도가 그렇게까지 나서니 최현욱도 더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새 진태하가 잽싸게 강경희에게 이로미의 흐느적거리는 팔을 걸쳐주며 능청을 떨었다.


“어유, 누님이 최고십니다. 아무렴요.”

“강쌤은 어디 가고 갑자기 누님이야?”


이윤도가 기가 찬 듯 웃자 진태하가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땡큐포인트가 지금 막 적립돼서 누님 레벨로 승급하셨거든요.”

“진 사장님 가게가 잘 되는 비결이 이거구나.”


이로미를 데리고 가는 일행을 전송하다 말고 최현욱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날아오는 공을 모두 쳐내는 프로 선수처럼 노련하게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진태하를 부럽게 쳐다보았다. 정작 진태하는 그 말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형님, 그거 무슨 비결이나 컨셉이 아니에요.”

“예...?”

“이런 척 저런 척 꾸며내는 게 무슨 진실성이 있겠어요. 자기 생긴 대로 해야죠. 그게 가게든 사람이든 오래가는 비결... 아, 비결이 맞았네...?”


장난하다 말고 걸린 개구쟁이처럼 씩 웃는 진태하를 먼저 보내고 공방 2층의 살림집으로 걸음을 옮기며 최현욱이 상념에 빠져들었다.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억지로 꾸며내지 말고, 그것이 오래가는 비결.

진태하가 했던 말에 어느새 자신의 생각이 섞여 들어가 있었지만 최현욱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회식 이튿날 멀쩡한 얼굴로 카페에 일하러 나온 이로미를 보자마자 걱정이 되어서 한소리를 했더니 한다는 말이 걸작이었다.


-저 다른 데서는 절대 그렇게 안 마셔요. 세상을 뭘 믿고.

-아니, 그런 사람이 어제는 왜 그랬어요?

-쌤들이랑 있을 때 마셔야죠! 그때가 아니면 언제 안심하고 마신다구요?


어이가 없어진 최현욱이 멍하니 입을 벌리자 이로미 뒤편에서 선반을 정리하고 있던 진태하가 입술만 달싹달싹 움직이는 것이, 아마도 그것 보세요, 제가 뭐랬어요-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던 데다가 그다음 날도, 이로미도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기에 최현욱은 이렇게 묻혀가나 보다,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이로미가 떠안기고 간 봉투 속에서 잊혀지기를 바란 단어가 다시 떠억하니 고개를 내밀기 전까지는.


‘설마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앗, 선생님! 보고 계셨네요? 다행이다!”


최현욱의 손에서 봉투가 툭 떨어졌다. 최현욱의 반응이야 이러거나 저러거나, 잽싸게 다가온 이로미가 홍보지를 한 장 꺼내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제가요, 선생님하고 미리 클래스 수강 안내나 내용 같은 걸 다 상의했어야 했는데, 그날 분위기가 그런 디테일한 이야기를 하긴 좀 그랬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확! 눈길을 끌 수 있게끔 여기서 이런 걸 가르친다!! 그런 광고가 될 만한 1차 홍보지를 만들어 봤어요. 어때요, 맘에 드세요?”


언뜻 듣기에는 마치 의향을 물어보는 듯했으나 이로미를 제법 봐 온 최현욱은 속뜻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Say yes ASAP.


“어, 네. 예쁘네요. 특히 여기 들어간 이 곡선 장식이...”

“그쵸! 요즘 많이 쓰는 타이틀 타이포 스타일이래요. 저도 한 번 흉내 내 봤어요. 일단은 이걸 좀 붙여서 수강생을 최소 세 명 이상 모은 다음에 클래스를 오픈하면 어떨까요?”

“그, 네. 좋네요. 그런데 로미 씨, 지금 일할 시간 아니에요?”

“10분 준댔어요, 우리 짠돌이 사장님이.”

“짠돌이?”


최현욱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가 아는 한 진태하는 짠돌이와 가장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미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네, 시간 짠돌이. 암튼요, 제가 오랜만에 의욕이 났거든요? 진짜 잘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원래 사람이 의욕적이 되는 법이에요. 선생님은 진짜 한 줌 팬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아티스트란 말이에요.”


딱히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은데, 하는 그의 속내는 미처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간 이로미가 눈물 바람으로 설득이라도 할 기세였기에.

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해졌든, 심란해졌든, 이제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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