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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r 19. 2024

건설적인 의견인데?

1.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2)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인 남편 이윤도를 도와 병원 운영을 돕고 있는 강경희가 활달하게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지역까지 내려와 산다기엔, 그녀는 마치 토박이 주민처럼 친구도 지인도 많은 데다 강릉 곳곳을 제 고향처럼 속속들이 알았다.

히요코 식당 사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만만찮게 벌어진 입술 크기로 보면 어쩜, 세상에- 같은 극적인 감탄사가 나올 법도 한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고작 ‘어머나’였다.


계속되는 칭찬일색에 민망해진 최현욱은 반론을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만히 있으면 빨리 끝나겠거니,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으나 상황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슬쩍 최현욱을 화제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던 강경희가 씨익 웃더니 한마디를 보탰다.


“그죠? 최 사장님, 혹시 제자 안 키우세요? 그 왜, 옛날엔 그런 장인들은 도제라고 했던가... 아무튼 제자도 키우고 그랬잖아요? 최 사장님도 야무진 제자 하나 키워서 쭈욱 공방 이어가면 그게 역사잖아요. 얼마나 멋있어.”


칭찬에 조금쯤 기분이 들뜬 탓일까, 아니면 술기운이 오른 탓일까.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최현욱이 평소라면 속에 넣어두고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뱉고 말았다.


“사실, 이 공방이 지역을 옮겨서 그렇지 나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어머, 정말요?”


강경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통과 격을 좋아하는 진태하는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귀를 기울였다.


“예에. 제가 유학 중에 우연히 만났던 스승님께 배웠죠.”

“바이올린 말고요? 도자기를?”


최현욱의 말이 의외였던지 이윤도도 놀란 음성으로 가세했다. 최현욱은 조금 객쩍은 기분이 되어 조그만 소주잔 가두리를 만지작거렸다.


“예. 잠깐 방황했달까, 관심이 다른 데로 갔달까. 그러던 때에 운 좋게 스승님을 만나서 이 일을 배웠어요. 그러니까 사실상 이 공방은 2대째인 거죠.”

“세상에, 그런 역사가 있었구나. 너-무- 멋있다!”


강경희가 감격한 얼굴로 짝짝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와아- 그렇구나. 도예도 정식으로 배우신 거였구나. 어쩐지 예사로운 작품성이 아니더라니.”


진태하가 확신이 실린 목소리로 가세하자 최현욱은 점점 더 민망해졌다. 주량이 약한 편이 아님에도 얼굴이 점점 달아올라 화끈거리기까지 하는 것이 꼭 술 탓만은 아닌 듯했다.

어쩌다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된 거지, 하며 최현욱은 이 화제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도무지 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혀가 꼬일 대로 꼬인 이로미가 의외의 제안을 하기 직전까지는.


“그니까느은! 선샘미는 클래스를 하셔야 돼요오...”

“맛이 간 녀석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건설적인데. 흠, 클래스라.”


진태하가 고개를 기울이며 꽤 진지하게 그 말을 검토하듯 되뇌어 보았다. 최현욱은 등 뒤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기분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진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태하가 뭔가를 진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건 곧 현실이 된다는 것 정도는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인데? 진 사장님 말이 맞아요. 그냥 완성품만 파는 걸로 묻히기는 아까운 능력이잖아요. 이참에 그 재주도 널리 퍼트리고, 이왕이면 돈도 더 벌고. 그럼 좋잖아요.”

“글타고요! 수익 다각화, 상식인데...”


거의 상반신이 허물어진 상태로 헤롱거리던 이로미가 검지를 착 치켜들고 외치자 진태하가 와락 인상을 썼다.


“야, 넌 입 다물고 그냥 자라. 집에 배달해 줄 테니까. 으이구...”


장렬한 한마디를 남긴 이로미는 이미 에이미의 어깨에 기대에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진태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우리 집에서 재울게요. 로미 씨 혼자 살잖아요. 내일 아침에 깨면 분명히 속 쓰릴 텐데, 그래도 챙겨줄 사람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럼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취한 사람 정말 무거워요. 사장님 힘으로 얘를 어떻게 이고 지고 가시려고요.”


이로미가 본격적으로 졸아버리자 모임은 금세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가만 보면 진 사장님이 로미 정말 살뜰하게 챙기신다니까?”


강경희가 짓궂게 한마디를 던지자 진태하가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찌글찌글하게 구긴 채 불평했다.


“강쌤,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진짜 악몽 꾸겠네. 제가 장담하는데, 얘는요, 일 야무지게 잘하는 게 장점이거든요?”

“우와, 장담까지? 또 뭐가 장점이에요?”

“그 유일무이한 장점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단점을 그나마 상쇄해 주는 거라고요. 아, 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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