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이전의 단순한 모습]
마음속에서 맴도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글의 제목을 '원형회복'이라 무척 거창하게 썼지만 대체할 다른 제목을 찾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 원형회복에 대한 나의 짧은 이야기이다.
2013년 즈음하여 기업교육에서도 '힐링'이 유행이었다. 그 당시 과목 개발을 해야 했고 첫 번째 결과물은 '한국음악을 통한 창조적 인생'이라는 힐링 프로그램이었다(이것도 지금 보니 무척 거창하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나의 짧은 지식으로 정성 들여 만든 나의 첫 작품 같은 것이었고 몇 년간 기업에서 실행되었다. 두 번째는 3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자료를 서치하고 모으는 단계에서 끝이 났지만 프로그램의 큰 주제는 '기업 혁신'이었다. 자료를 찾다가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지금은 절판되어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으로 개정, 증보되어 나왔다) 그 책 안에 이 그림과 글이 담겨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상처를 받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기 이전에,
자기를 보호하느라 두꺼운 껍질로
스스로를 감싸기 이전에,
세상과 싸우느라 굳은 얼굴을 갖기 이전에,
그 사람의 모습은 어땠을까?
물고기 여신(2014), 캔버스에 유화, 50X61cm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 정은혜 지음. 샨티.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의 실태와 사내 인간관계 등을 비춰서 내 나름대로 이 단어의 개념을 그려보았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회복하는 것, 원래의 모습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그때의 멈춰있던 생각이 마음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나 보다. 최근에 이 그림이 떠올라 새로 개정된 책을 사서 읽어도 보았다. 주변에서 새로운 뭔가를 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새로운 뭔가를 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음식을 먹어보거나 새로운 취미활동을 하는 것들이 되려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주말에 가족과 나들이를 가도 여러 번 가보았던 곳에 가서 편안히 즐기다 오고, 음식은 가능하면 만들어 먹고, 여유가 허락된 밤엔 늘 음악과 책 그 사이 어딘가를 거닐다 오면 마음이 좋았다.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게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나를 단단하게 하고 이롭게 하는 길이, 우선은 나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본의 아니게 스스로 상처를 내고 또 상처를 받으며 내 모습들이 자꾸만 변해갔을 테다. 그 세월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데려갔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게 되지 못했다면 때마다 회복하길 바란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아플 때에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긴 했어도 기저에는 늘 내가 괜찮아지길 누구보다 소망했다.
그럼 나의 원형은, 복잡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기 이전의 단순한 모습은 어디에 머물러 있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일까, 사춘기 이전일까, 평등하게 공부하며 자유를 누리던 대학시절일까? 아니면 나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일까? 시간을 거슬러갈수록 이상하게 더 찾기가 어렵고 생각만 깊어진다.
새해가 시작되고 내 아이가 두 돌을 맞이했다. 그러고 2월 즈음의 나는 어떤 결핍이 높게 쌓여 무기력해져 있었다. 해맑게 웃어주는 아이 곁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만 겨우 처리하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아기를 재우고 핸드폰을 보던 중에 무심히 온라인 책모임을 신청했고 5주 동안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생겨나 있는 힘을 다해 참여했다. 4월 중순이 된 지금, 무기력한 엄마에서 생기 있는 나로 차츰 회복되었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작은 힘도 생겨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의 원형은 내가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견뎌내고 회복되었다고 스스로 느꼈을 때 편안해진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그래, 내 본래 단순한 모습은 이거지'라며 편안해진 나와 마주했다. 아이에게 많은 품을 내어주고 따듯한 목소리로 노래 불러준다. 아이가 잠든 밤 책을 꺼내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정리해본다. 아껴듣는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정리하고 흘려보낸다. 소리 내지 않고 운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한다. 마음이 커질 땐 약속은 정하지 않고 만나러 간다. 오랜 친구에게 다정한 메시지와 소식을 전한다. 차마 연락하진 못해도 좋았던 인연들을 추억하며 감사해한다. 붙이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따듯한 햇살과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저 걷는다. 나의 원형이다.
나의 원형을 적어본다. 내 안에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 그것을 아름답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내 안에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