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
근무하던 남자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아이들 성교육시간 마지막에는 수업시간에 질문 못했지만 개인적인 고민이나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당부했었다. 아이들이 제발 음지에서 얻은 정보들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좋겠기도 하고 내 아들이 부모에게 물어볼 수없는 것을 학교에서 다른 어른들이 가르쳐준다면 나라면 안심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니 남의 자식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상담해주곤 했었다.
이 케이스는 반드시 개입이 필요하지만 접근이 어렵고 예민할 수 있고 법적인 한계도 있는 케이스였다.
요즘은 사실 학업 성적 외의 고민은 교사가 개입해 주기 힘들다.
섣불리 그들의 인생에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큰 역풍을 맞는다.
그런데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은 아주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인생에 끼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가 요청했던 건- 누나를 도와달라-
아이의 배경을 첨언하자면 엄마는 부재했고 아빠와 누나와 생활하는데 누나는 아빠와 갈등을 겪는 중 잦은 가출시도를 했다. 인문계로 진학하라는 아빠의 말을 안 듣고 특성화고에 진학했으나 적응 못하여 자퇴해서 학교밖 청소년으로 분류된 상태라고 했다. 누나는 자퇴와 가출을 일삼고 아빠와 누나의 갈등은 극에 달한 상황에 아이는 괴로움을 토로했다
아이가 나에게 밝힌 건 아빠가 누나에게 *임플라논 시술을 받게 했다는 것.
아빠가 누나에게 그 시술을 받게 강요한게 누나가 집을 나간 결정적 사유가 된것이였다. 아이는 그 시술이 무엇인지 내 교육시간에 인지하게 되어서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큰 의구심은
아빠와 딸의 문제가 과연 아이가 말한 것뿐일까? 아이는 누나가 인문계를 진학 안 한 것 때문에 아빠와 갈등을 겪다 집을 나갔다는데 아이가 파악한 게 맞을까?
어쩌면 누나는 막장의 상황에 처한 게 아닐까? 누나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
아빠가 딸에게 본인의 의사에 반한 피임시술을 시킨다??????????나의 생각과 경험의 한계에서는 온전히 받아 들 일수 없었다. 의문이 들자 여러 무서운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교사라는 지위로 개입할 수 있는 건 현재 우리 학교 학생인 동생에게만 한정된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한 건 누나이다.
내 꼬리를 무는 생각이 맞다면 학대, 그것도 친부에 의한 성적 학대까지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게 맞다면 이건 큰일이다 싶었다.
아이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그게 다였고 아이도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 외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는 눈치였다.
애가 타들어 갔지만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하기엔 너무 정보도 없고 한계도 명확했다.
그 당시 알아보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했다
일단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청소년복지 센터 상담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역사회에서 학교밖 청소년에게 뻗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서 누나와 먼저 컨택해서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긴급으로 이 친구들부터 만나봐 달라고 ,우리 학생과 그 누나 둘 다 위기 청소년 케이스로 넣어달라고 청탁했다
지금은 교사는 신고의무자로 아동학대의심만 되어도 바로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게 법적의무이지만
10년 전에는 아동학대라고 혼자 결정해서 신고하기엔 나는 담임도 아니었고 관리자에게 먼저 보고할 의무도 있다 관리자에게 구두 보고를 했지만 관리자는 나보다 더 당황해했다.
그리고 사실 동생에게 단편적으로 들은이야기로 아빠를 신고하기엔 너무 정보가 없었고 나의 한계 역시 명확하게 우리 학교 학생인 동생에게 만으로 제한되었다
복지센터의 심리상담사와 연결해서 이 케이스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이용하는게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우리학생과 누나는 위기 청소년 상담을 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상담사에게 내담자와 상담자의 비밀유지 때문에 누나의 모든 건 다 묻지 못하지만 누나와 아빠의 문제는 내가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인지, 내가 걱정하고 있는게 맞는지 알아야겠다고 우겼다.
다행히 아빠가 학대하는 문제가 아닌 아빠가 정말로 딸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는 걸 알았고 지역사회 자원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센터에서 가족상담도 이뤄져서 아빠와 누나 우리 학생 전부 내담자가 돼서 가족상담도 진행되었고 상담사의 노련한 도움으로 누나와 아빠의 역동도 조금씩 해결이 되었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상담사를 만나는 행운.
그 당시 그 상담사는 큰애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갔다가 학부모 관계로 만났는데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해결고리가 되어줬다
우리가 오은영선생님께 열광하지만 그 아무리 오은영선생님이라도 개개인의 모든 개별케이스나 복잡한 가정사에 다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감함을 가지고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려 하는 의지는 중요하다.
오지랖쟁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어른 구성원으로서 미성년자 구성원이 어떤 위기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 때는
'에잇 남의 일이야 남의 자식일에 오지라퍼 되면 피곤해'
라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혹시라도 모르니 걱정해줘야 한 거 아냐? 상대는 미성년자 자다! 그렇다면 어른인 내가 비록 능력이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오지랖은 부려줘야 해'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케이스의 경우는 천만 다행히 내 걱정을 비껴갔지만
그때의 오지랖을 후회하지 않는다
청소년복지센터에 마침 신뢰할 만한 상담사를 알고 있지 못했다면, 그 케이스를 의뢰해 상황 파악을 할 수없었다면
수사기관에라도 신고해서 상황을 파악할 작정이었으니까.
그랬다면 일은 더 커졌겠지.
자녀를 공동으로 책임져줄 엄마는 그 책임을 버리고 떠났고 부인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사춘기 딸과 갈등을 겪을 때 자신의 방식으로 보호하려던 어찌 보면 책임감 있는 아빠였던 사람을 크게 오해하고 신고했더라면 그분의 삶에 큰 충격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렇더라도 그분은 성인이니 또 생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런 힘이 없다. 그러므로 의혹이 드는 상황이라면 아이들 옆에 서주는 게 맞다 .
민감성이란 꼭 나쁜 것이 아니라 약자 편에서 생각해 주는 것이다.
아무권리가 없더라도 민감하게 돌아볼 생각이였는데
신고의무자이니 더욱더 민감하게 둘러보며 살아갈 것이다.
*임플라논(에토노게스테렐)- 상박 피하부에 이식하는 호르몬제 . 피임시술법의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