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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13. 우리의 유년기

by 언젠가

그는 나의 글을 좋아한다.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글을 좋아해 준 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다.

그리고 그는 말이 아닌 글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쓴 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정과 느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마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는 내 글을 읽고 '나의 사유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라고 표현했다.

그가 그 표현을 했던 건 나의 유년기에 대한 글이었다. 물론 그는 나의 다른 글들도 다 좋아했다. 그는 나를 읽어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위로받으려고 썼으나 나중에 돌아보고 생각해 보니 너무나 사적이고 너무나 감정적인 , 어찌 보면 감정의 배설에 가까워 돌아보기 힘들 정도였던 글 속에서 나를 정확히 이해했고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해 줬다. 한때 나는 내 브런치의 모든 글을 삭제하고 싶었었다. 감정의 격변기를 지나고 나니 , 그때의 내가 너무나 혼란스러웠구나 하고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는 그 감정까지도 알아차렸다.


내가 가장 사랑했지만 가장 인기 없던 내 유년기에 관한 글을 그가 아주 깊이 이해하고 내가 표현한 나의 고향 정경을 그려내며 그의 언어로 나에게 다시 풀어 설명했을 때 그게 정확히 내 기억과 일치한 기억은 너무나 짜릿했다.

아마도 그 근원은 서로의 유년기 시절에 대한 교류와 이해를 통해 그 사람의 근원, 흐르는 물의 지류를 파악하였기 때문이겠지.


서로가 깨어있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찾아내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틈틈이 , 독일의 형편없는 통신연결 상태를 극복하며 전화를 하고 카톡을 나누는 노력들을 하며 어쩔 땐 문득 우리가 이렇게 취향과 감정과 어찌 보면 주파수가 일치하는 건 그저 우리가 비슷한 아픔들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분명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신사들을 현실에서 소개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금과 같은 완전한 안심과 안전한 느낌이 아닌 불안함과 두려움이 더 컸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혼을 통한 단절이라는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서로를 이해하는 건 아니다.


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람인데 그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사람이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의 유년기 청년기 그리고 현재를 아주 잘 이해하고 알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게 있을 수 있나? 하고 반문한다.

애들 딸린 중년의 싱글맘.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나기 벅차고 혼자 아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질 생각을 하면 이미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며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아줌마에게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이 아줌마는 의심부터 하고 봐야 맞는 스탠스이다. 이 아줌마는 비록 가진 게 없어도 지킬 건 많은 사람이다. 나 자신도 지켜야 하고 나를 온전히 지켜내고 나의 안녕과 안정을 통해 나의 자식들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켜야 한다. 불완전한 가족이라 여겨지디 않도록, 아이들이 결핍이 있다 여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완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나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에게 로맨스라니,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물리적인 영향은 줄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사실이 안심이 되는 전재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관계 맺음을 통해서 확장되고 물리적인 폭력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정서적인 비수를 꽃을 수 있기에 그 조차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또 흔들리고 괴로워서 그 감정이 내 아이에게 전염된다면 나는 아마 죄책감에 사로잡혀 버릴 것이다.

이역만리에 있는 남자와 정서적인 교감을 할 시간에 미국 고배당주를 공부하여 권리금 입금일을 챙기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란 걸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합리를 버리고 행복을 택했다. 그거 공부해서 코딱지 만한 권리금 입금받는다 해도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용기를 내서 내 행복을 택하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만한 커다란 에너지를 얻는다는 걸 , 현실의 각박함을 살아낸 지독한 현실주의자 아줌마는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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