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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15. 취약점

by 언젠가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며느라기 같은 시집살이가 주제가 된 컨텐츠들은 보지 못한다. 내 경험과 겹쳐서 PTSD가 오는 기분이다. 그땐 그냥 흘려 버릴 수 있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은 아주 큰 고통이였나보다. 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미해결된 아픔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야 한다.

이혼 후 전 남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사과를 받고 용서하는 과정에서 겪는 화해와 치유를 경험했다. 진정한 사과는 힘이있다. 그게 선행 되야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고 흘려버리고 회복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잠깐 내가 전 시모와의 경험에서 얻은 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의 사과를 받고 그녀와 나의 관계에서 얻었던 상처들을 극복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으나 어떤 사람과는 대화를 통한 관계의 개선이 가능하고 어떤 사람과는 영원한 단절을 선택하는 것이 나를 덜 다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정도의 지각은 있기에 그녀와 대면을 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이혼을 할 때는 단순히 법적인 지위변화로 생각했다. 단순히 기혼자에서 미혼자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건 앞으로 생의 아주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이분법 적인 생각으로 반듯하고 괜찮은 성인 남성과 교류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하다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어떤 시작을 하기엔 돌아보니 나는 아주 많은 부분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그 사실을 그와 교류를 하며 알게 되었다. 내 과거의 상처들은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나의 바램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행복해지고 싶지만 과연 내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늘 시달렸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확신에 찬 태도와 무한한 애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지만 감정적인 거리는 없다.

함께 있어도 외롭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함께 하지 못해도 충만하게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내가 이것을 누려도 되는가 하는 의심에 늘 시달린다는것.

마치 매맞는 부인이 편안해 지면 초조해 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 취약점은 이것이였다.


이건 반드시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확신에 찬 그의 말들에 도망을 치며 거리를 유지해 달라고 (이미 너무나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는 구구절절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내 두려움을 알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건 혼자서 극복할 과정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정이므로 자신에게도 역할이 있다고 주장하며 나를 설득했다. 자신이 주는 애정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럼 그 모든것이 극복되어 질 것이라고.


애정 표현이 자연스럽고 과하거나 박하지 않는것 그리고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기쁨.

나는 어쩌면 생에 처음으로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을 받는것 같다. 어쩌면 내 취약한 부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치유될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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