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진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오다 단절과 이별을 경험한 남녀가 다시 한번 새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만남을 가진 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나의 경험상 첫 번째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럼 그것에서 배움을 얻어 두 번째에는 다른 것에 중요점을 두어야 하는가?
내가 한 고민들이 이런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얻은 것들이 있는데 또 다른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괴로웠다.
그런데 멀리 독일에 있는 어떤 남자가 나를 찾아내서 그 사람과 교류를 나누다 보니 내 고민의 관점 자체가 아주 변해 버렸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결혼이란 제도로 묶인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라는 조건을 넣었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교류하는데 그 어떤 가능성, 전제되는 조건 그런 것이 무의미하단걸 이제야 알았다.
이 사람은 마치 나 같다.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럼 이 사람과 어떤 미래를 펼칠지 어떤 계획을 할지는 무의미하다.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은 현재만 있다. 어쩔 땐 내가 나를 보는 것처럼 상대방이 보인다. 이 교류의 끝이 무엇이 될지 궁금하지 않은 교류는 처음이다.
이십 대에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연애의 끝은 결혼이란 결론을 못 박고 그렇다면 결혼에 필요한 것, 가정을 꾸리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나만의 조건을 정해 그걸 충족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는데 필요한 조건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럼 다른 조건을 정해 그걸 충족하는 사람과 관계를 시작해야겠다는 나의 단순하고 평면적인 생각이 깨졌다.
장거리 연애라고 하기엔 조금 무색할 정도로 연애라는 관계가 성립되기까지 필요한 빌드업의 과정도 없다.
단순히 통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고 하기엔 많은 것을 교감하고 있고 서로에게 진지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이 잠들었을 때 깨어있고 일곱 시간 뒤에 확인하게 될 텍스트를 남기더라도 신중하고 진지하게 언어를 선택하고 싶다.
인생은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방식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정한 방식은 단순하게도 어른들이 옳다고 여긴 방식이고 사회가 규정해 버린 정답이 있다면 이것이다 를 따른 방식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남들이 하는 데로 했고 남들이 사는 데로 평범하게 살아가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건 남들이 하는 평범함이 아니다. 이런 방식은 본 적이 없고 겪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들지 않고 편안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는 나를 외계인 같다고 표현했다. 어쩌면 나는 외계인이 맞을지도 모른다.
I'm english man in newyork. 그는 이런 나를 알아봤다. 어쩌면 그도 그렇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