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돌봄의 정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했던 사람.
좋든 싫든 계약을 맺었던 사람이고 파트너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며 그 과정에서 행복도 불행도 겪게 했던 사람. 이혼을 하고 일정기간 나는 많이 아팠는데 그 아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건 전 남편이 어느 날 찾아와 진심으로 사과를 해서였다.
그와 함께 노후를 맞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는 고맙게도 아주 적절한 시기에 마음이 담긴 사과를 전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용서하고 놓아주었으며 진심으로 그의 성공과 행복을 빌어 줄 수 있었다. 진심이 담긴 사과의 힘은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헤어지자 그도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어쩌면 더 큰 사람이 될 기회를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에게 사과하고 싶다. 맞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가 처리해야 할 부분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처리하여 버렸던 것. 인간은 누구나 간사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편한 길을 찾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는데 내가 어쩌면 그 습성을 강화시켰을지도 모른다. 회피하고 숨어 있으면 누군가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편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가 자생력을 키우기도 전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해 버려서 그는 너무 쉽게 너무 자기 위주로 판단하여 쉬운 길만 걸으려 했고, 어렵고 먼 길을 걸어낼 힘을 못 키워낸 것일지도 모른다. 점점 상황이 나빠지는데도 끝까지 나는 짐을 지고 이끌어가려고 했으며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 낼 힘이 없다고 여겨지자 포기해 버렸다. 가장 큰 잘못은 나 혼자 오랜 시간을 외로워했던 것이다.
전 남편은 위기의 순간,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제안을 하지 않고 네가 해결해라, 알아서 해라, 너는 강한 사람이지 않느냐. 네가 더 많이 가진 사람이니 너는 알아서 헤쳐나가면 된다 하고 말했었다. 내가 가장 약했던 순간에 그가 그렇게 나를 규정하던 것이 몹시 억울하다 느껴졌었는데 돌아보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아주 취약했던 순간마저도 그 두려움을 애써 다잡았고 현실을 헤쳐나갈 길만 모색했지 나의 아픔을 털어놓고 내가 약하다는 것을 호소하지 않고 그저 알아주길 바랐다. 한 번도 징징거리지 않았고 울지 않았다. 내가 이리 약해져 있는데 왜 나를 돌보지 않느냐고 원망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파트너에게 나는 외롭게 두어도 내가 알아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인식시키는 건 아주 큰 잘못이다. 스스로에게도 파트너에게도.
지난 결혼생활의 패착이 무언지 직시하게 된 것은 돌봄과 보호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고 난 이후부터다. 내가 나를 알면 그 이후는 무엇이든 두렵지 않고 어떤 방식이든 시도해 볼 수 있다. 나는 결혼이란 독립된 두 성인이 독립된 길을 가는 것이라 여겼다. 이미 완성된 개체들의 만남이므로 서로의 보호와 돌봄은 필요 없다 생각했다. 내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건 자식일 뿐. 파트너에게 나를 돌봐달라 요구하지도 않았고 성인 남성인 파트너에게도 어른이라면 무릇 스스로를 돌봐야지 자녀 돌보기도 바쁜 나에게 돌봄까지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일곱 시간의 시차만큼 보호와 돌봄의 정의를 나와 다르게 여기는 사람의 설명 듣고 나자 이제야 모든 실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정을 이룰 때 가장 큰 틀이 되는 건 가족구성원 중 성인인 부부가 자녀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부부가 서로를 보호하고 돌봐서 견고한 성벽을 쌓아야지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해 보고 알지 못하던 개념. 성인인 부부가 서로를 돌보는 것. 서로의 약함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돌보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호받는 것.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내가 오랜 시간 동안 표현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갈구하고 그리워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지금 어떠냐, 괜찮냐 하고 물어봐주는 사람.
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듣고 보니 이런 지점은 속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구나를 나보다 먼저 파악해서 그 지점을 위로해 주는 사람. 함께 있으며 표정이나 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신호를 주고받지 않는데도 불완전한 통신환경 속의 전화상의 목소리로만으로 그런 것을 파악해 내는 사람.
아.. 그동안 내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열심히 잘 살아오길 잘했나 보다. 잘했다 그동안 잘 살아낸 나. 결국에 이런 로또를 맞게 되는구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