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이야기

그때의 나를 안아줘야만 지금의 나는 나아갈 수 있다.

by 언젠가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몰아치는 걸 경험한다.

사진첩의 사진이 낡고 바랠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방금 일처럼 선명한 기억과 함께 그때의 그 느낌,공기,냄새까지 생생히 살아난다. 유년기의 향수와 그시절의 동경에 관해 쓴 소설의 대표주, 미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아직 완독 하지는 못했다. 그 책을 펼치면 곧 졸음이 몰려온다. 몇 번을 퍼뜩 깨어서 다시 좀 읽다 졸다를 계속하다 아 도저히 다 못 읽겠어하고 집어던져 버리고는 결국 완독은 포기했다.


이 재미나고 도파민이 가득한 숏폼 세상에 왜 내가 철지난 오래된 프랑스 작가의 의식의 흐름 속에 갇혀 버려야 하지? 아이고 난 못하겠다 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그 작가가 마들렌을 먹다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문득 유년기 시절의 어떤 추억을 건드렸고 그 기억이 생생하게 몰려와 7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장편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기억의 우발성이 주는 필연성은 공감한다. 그리고 몇 구절은 정말로 마음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진정한 발견은 여행을 떠나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있습니다."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의 힘을 발전시키는 것은 슬픔입니다"

"유일한 낙원은 잃어버린 낙원뿐입니다."

"우리는 불행할 때 도덕적이 됩니다"


나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고 성취하고 싶어 해서 노력했지만 내 본질은 약한 자아로 구성되어 있다. 선택의 순간에서는 나보다 남의 눈치를 더 많이 봤다. 내가 참았을 때 다수가 만족한다면 내가 참는 게 미덕이다라고 생각했다.


명절에 시집 식구들 모두 거실에 앉아 있는 동안에 나는 부엌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일이 그렇게 불만스럽지 않다 여겼다. 내가 시댁에 가면 시댁 구성원들은 나의 대접을 당연히 여겼다. 나도 대접해야 한다는걸 딱히 불만스러워 한건 아니다. 사실 내 스스로의 자각이 아닌 많은 며느리들이 자각해서 그게 불만이다 하고 외치자, 그제서야 어랍쇼? 남들이 다 그렇다 하니 정말 그렇네? 하고 느끼고 나서야 그게 꽤 문제였다는걸 알았다.


첫 추석에 명절 대수송 KTX 표는 미리미리 예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친정 가는 표를 구하지 못하자 어떻게 하지 하고 갈등하는 나에게 오히려 잘됐네! 이번 명절에 방문하는 친척들이 많을 것이고 네가 인사 다녀야 할 친척들도 많으니 몽땅 그냥 시댁에 들어와서 지내라는 시어머니의 설득에 넘어가면서도 그냥 참았다. 부인이 얼마나 친정에 가고 싶어 하는지 그 마음도 몰라주고 표가 없으면 그럼 운전 힘든데 운전해서 올라가야 하나 어쩌나 눈치 보던 남편이 아싸 다행이다 하고 속으로 좋아하는걸 알았지만 참아줬다.

어차피 매일 가는 가까운 시댁에서 모임 구성원이라고는 시댁 친척 어른들 뿐인 상황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전을 구워내야 하고 몇 번의 상을 차리고 치워내느라 힘겨울지 헤아지리 못하는 남편에게 화 한번 내지 못했다. 내가 참는 게 미덕이다 여기며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하다 하고 살다가 마침내 폭발해 버리고 나서는 나를 착취하고 공격했던 사람들과 단절을 선택했다. 그런데 태산 같던 그들도 어느 순간 아무 힘없는 노인이 돼버렸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더 큰 공허가 몰려왔다.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겪으며 이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타인을 쥐고 조종하고 부리는데 능숙한 너무나 세고 강한 시어머니가 원인일까? 쥐고 흔들리고만 살아서 뭐가 중한지 모르고 사는 너무나 약한 내 남편이 원인일까? 아니면 돈을 앞세워 효도 경쟁을 벌이려는 시부모님의 은근한 경쟁구도를 공고화 시키고 상생이 아닌 형제들과 경쟁을 선택하며 끝없이 시부모님의 자산을 탐하고 축내던 시동서가? 시부모가 개최한 당신말 잘듣는 며느리한테만 땅줄꺼다 한 그 이상한 대회의 레이스에서 선두에 섰던 시동서가 정말 원인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예 그 판을 깨고 나와 생을 살아가고 결국 그 모두와 단절하고 내 힘으로 내 발로 묵묵히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나만을 판을 완성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모든 고통과 어려움의 원인은 결국 나를 최선에 두지 않고 남에게 더 잘해야 하는 착한 딸로 교육 받아와서 남을 위한 선택을 했던 나에게 있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 판을 선택한 것도 나, 그 판을 깨트린 것도 나, 또 다른 판을 만든 것도 나. 내 인생의 판이란 내가 짜야만 한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닳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완성되어 가고 있다.


사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왜 그렇게 나를 먼저 하는 선택이 아닌 타인을 우선에 두는 선택을 하고 살아왔나를 성찰하는 건 중요하다. 내 약한 자아의 본질이 어디서 비롯되었나를 찾다가 드디어 내 유년기를 돌아보고 김포에서의 나를 마주하고야 알았다.

새로운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익숙하고 오래된 풍경 속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때에 진정한 발견을 할 수 있다는 프루스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김포를 돌아보면 평야가 펼쳐진다. 그 평야 속에서 토끼풀을 따서 꽃 목걸이를 만들던 어린 내가 보인다.

어린 동생이 딸린 데다가 가게를 비울 수 없으니 내 소풍엔 따라가 줄 수 없다는 엄마에게 징징거리다 기어이 등짝을 맞고 혼자 딸기밭 소풍을 갔던 유치원의 내가 보인다.

엄마가 그래야 한다고 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멀미를 참으며 하루 두 시간 힘든 통학길에 올랐던 내가 보인다. 그렇게 살며 기어이 성취해내고 학생회 부회장이 되었는데 먼저 딸의 성취를 칭찬해 주지 않고 회장단 학부모라는 또 다른 임무가 생긴 걸 난처해하는 바쁜 엄마를 이해했지만 나의 빛나는 성취는 빛을 내기도 전에 빛을 잃었다.

엄마가 내 참관수업에도 와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언니와 동생의 교실에만 갔다 서둘러 돌아 가버려도 이해했지만 사실 내심 기다렸다. 엄마가 그 전날 분명히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으니 내일 있을 참관 수업엔 언니네 반에 갈 거야. 언니는 너보다 고학년이라 엄마가 가서 봐야 해. 그리고 동생반에 갈 거야 동생은 아직 너보다 어리니까 엄마가 가서 봐줘야 해. 너는 동생보다 크고 언니보다는 어리니 이해해 줄 거지? 하고 양해를 구했다. 엄마는 가게문에 잠시 비움을 적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자식들의 학교에 가서 자식 셋중에서 둘째는 잊은지도 모른체 큰애와 막내의 반을 갔다 다시 서둘러 돌아와 쉴틈없이 가게 문을 여는 것 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나는 "이해해 엄마 내 걱정은 하지 마"하는 착한 딸로 키워졌기에 알았다고 했지만 마음속 깊이는 나에게도 와주길 바랐다.

졸다가 버스에서 못 내려 멀리 종점까지 가서 어둡고 낯선 곳에서 엄마에게 전화해 나를 찾으러 와달라고 사정했다. 엄마는 가게문을 닫고 나에게 오기보다는 나에게 정신 차리고 버스를 타고 나오는 법을 가르쳐줬다. 엄마의 지시에 따라 정신 차리고 기어이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버스에서 졸지 않는 법도 배웠다.


열두 살 때 가족 휴가를 갔다 파도에 떠내려가며 백사장에 서 있는 아빠를 애타게 찾았지만 아빠가 아닌 낯선 타인에게 구조되었다. 나는 애써 그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내가 둘째를 출산할 때 딸을 먼저 구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아빠에게 구조되지 않은 딸에 대한 위로 없이 나를 건져준 그 타인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며 네가 그 은인을 찾아내 이제 라도 보상하라고 너무나 불쑥, 너무나 뜬금없이, 너무나 담담히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격렬히 화가 났었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화를 내지 못했다.

이제 나는 그런 나를 먼저 안아주고 보듬어 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참 잘했다 하고 나를 먼저 쓰다듬어주고 이제는 그 누구도 참아주지 말고 이해해 주지 말라고 소리쳐 주려고 한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행복은 몸에 좋지만 불행은 마음의 힘을 키워, 내인생에서 조차도 내가 이인자라고 여겨지고 늘 두 번째 좋은 걸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던 나는 인생 최대의 불행의 순간에는 드디어 나를 먼저 중심에 두었다. 그동안의 작은 불행으로 마음의 힘이 생겨났기에 큰 불행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불행을 겪어본 나는 도덕적이 되어서 타인의 불행을 이해하고 감싸 줄 수 있다.


이제 토끼풀이 펼쳐진 평야는 없다.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늘어선 신도시로 변했다.

김포는 잃어버린 낙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야 잃어버렸기에 유일한 낙원이 되었다.


김포의 나는 과거이지만 현재이고 미래이다. 김포의 나는 상처에 가득 차 있고 늘 애정을 갈구하는 약한 존재였다. 지금의 나는 과거를 직면하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생긴 강한 존재이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갈구하지 않는다.

그때의 부모의 나이만큼 살아보니 그때의 내 부모만큼 살아가기도 너무 힘들단 것을 뼈저리게 이해한다. 그리고 상견례때 엄마가 우리 시부모에게 했던

"풍족히 키우지는 못했지만 많이 사랑주며 예쁘게 키웠습니다. 잘부탁합니다." 그 말이 진심이였다는 것도 안다. 나는 늘 부족하다 여겼지만 사실을 많이 받아왔단 것도, 내 부모는 그 상황에서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에게 주고 나를 키워냈다는 것도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다. 그러니까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으니 더이상 흔들리지 말고 괴로워 말고 과하게 넘치게 받은 자식들처럼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만 위할 줄 알며 살아가려한다.


돌아보니 프루스트의 말이 다 맞았다. 구닥다리 프랑스의 벨 에포크 적 작가는 현명했다. 벨 에포크가 뭔지도 모르지만 이제야 나는 다시 그 일곱 권의 장편소설을 완독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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