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으로 많은 피를 보고 많은 죽음을 봐야 하는 전공을 선택했던 나였지만 내 자매가 피 흘리며 고통당하는 걸 보는 건 생경했다.
조카의 탄생, 언니의 출산을 본 나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귀여운 존재가 있을 수 있지? 하는 경탄과 함께 목숨 걸고 그 귀여운 존재를 세상에 내놓은 언니가 그 이전과 다르게 보이고 존경심도 들었던 것 같다. 첫 조카는 애틋하다 하는데 돌아보니 그 애틋함은 언니를 향했던 것 같다.
출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목격하고 나서 나 역시 그 경험을 하게 되겠구나 여성으로 사는 거, 엄마가 되는 건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 동지애적 애틋함이랄까?
언니는 엄마의 딸답게 부지런하고 빈틈없었다. 두 딸들이 다 공부를 잘했지만 나는 아등바등하는 스타일이라면 언니는 정말 공부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지만 중학교 때 언니 담임 이었던 선생님께 네 언니 따라가려면 멀었단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했다.
지방대 의대를 갈 수 있었지만 지독하게 현실적인 부모님의 딸답게 더 현실적이고 더 감당할 만한 선택으로 명문대 약대를 갔다. 엄마는 학부만 마쳐도 어차피 취업이 잘되고 돈을 잘 벌 수 있는데 석사과정을 하느라 매일 코피를 흘리고 점점 말라가는 언니를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제일 똑똑하고 가방끈 길고 하고 싶은 건 해내고야 마는 큰딸을 사실은 늘 자랑스러워하신단 걸 안다.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였어. 노란색 원피스가 언니 민트색 원피스가 나.
어렸을 때 개에 물린적 이후로 큰 개를 무서워했다. 개를 보고 무서워하는 어린 나를 달래주는 어린 언니.
언니는 힘든 석사과정 공부를 하면서도 주말 파트타임 약사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단 걸 알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고 웬만한 사회초년생의 월급만큼 벌었다. 그때 가난한 학부생인 나는 급할 때 언니 카드를 빌리곤 했다. 언니는 흔쾌히 빌려주며 언니 카드결제일 전까지만 네가 쓴 만큼 계산해서 입금하라 했다. 언젠가 삼 개월 할부로 옷을 샀는데 그만 세 번째 달 할부금 입금이 늦어진 적이 있다. 나도 그 당시 과외도 하고 카페에서도 일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르바이트비 입금이 하루이틀 미뤄지곤 해도 학부모나 사장님께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마니처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니한테
"아 치사해 아르바이트비 아직 못 받아서 그러는데 돈 받으면 그 세 번째 할부금 삼만삼천 원 그거 이자쳐서 사만 원으로 줄게" 하고 큰소리쳤다.
그때 언니는 정말 크게 나를 혼냈다.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함부로 탐하면 안 되고 특히 카드할부 우습게 보고 할부를 하면 안 되고 마지막으로 필수품이 아닌 스커트 따위에 홀려 남의 돈으로 그걸 얻어냈으면 반드시 약속한 시간에 돈을 입금해야 한다. 너의 무능과 안일로 내 카드가 연체되면 내 신용까지 떨어지는데 이 무서운 세상에서 제일 지켜야 하는 게 금융회사와 맺은 신용계약이다 라며 얼릉가서 아르바이트비 받아와서 내 카드값부터 내라 하고 성화였다. 그래서 정당히 일한 노동의 가치를 요구하지 못하고 고용주 눈치나 보던 가만히 가만히 살아 가마니 취급받던 나는 카페 사장님한테 아르바이트비 입금해 달라고 말할 용기를 냈다.
언니가 그때도 지금도 자랑스럽다. 같은 나무에서 열린 열매이지만 까마귀한테 제일 먼저 쪼아 먹힐 물컹한 홍시 같은 나에 비하면 마지막까지 절대 쪼아 먹히지 않을 단단한 단감 같은 언니가 내 언니라서 좋다.
그런 언니가 일찌감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조카들을 낳아 기르고 언니의 생의 풍파를 헤쳐나가는 동안 나는 먼 다른 도시로 가서 나 역시 가정을 꾸리고 내 생의 파도를 헤치느라 서로를 들여다 보지 못했다.
그런데 70,80년대의 딸들. 이미 그 자신만으로 충분히 기능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인 우리들이
남의 집 귀한 딸들을 보면 저들이 누군가의 귀한 딸이기전에 네가 아무리 귀해봤자 내 귀한 아들의 부인이자 내 며느리일 뿐이다 하는 인식이 기본값으로 박혀있는 40,50년대의 엄마들을 시부모로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자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조카의 탄생을 보고 생명 탄생의 경의로움 보다 출산이라는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고통을 나 역시 겪게 될 것이라는 자각으로 언니에게 그 어떤 애틋한 동지애가 생긴 것처럼.
물렁한 홍시 같은 나도 그 아무리 단단한 단감 같은 언니도 나에게 아들이란 자식이기 이전에 구원이라는 그 시대의 사상이 기본값으로 깔린 시엄마들을 상대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돌아보니 어? 언니도 어? 너도 그렇구나 우리 그럼 우리끼리라도 이해하고 보듬자 하는 동지애가 생겼다.
어느 순간 언니는 우리 친정에선 장녀이고 언니 시댁에선 맏며느리고 조카들에게는 엄마이고 언니 약국의 약국장이고 아주 많은 역할을 다 해내고 산다.
주어진 역할이 있으면 피하지 않고 다 해내고야 마는 사람.
돌아보니 삶이라는 이 험한 파도를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데 언니를 보면서 나보다 먼저 저 파도를 묵묵히 헤쳐나가는 존재가 저기 있구나 나도 그럼 힘을 내서 저 끝까지 가보자 하는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