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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Aug 03. 2020

성의 없다는 말

성의 없다는 말이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군대 시절인데요. 뭘해도 성의없다는 말로 돌아오는 선임병들의 답을 들으면 도대체 보이지도 않는 성의를 어떻게 보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보이지 않는 성의를 어떻게 보여주란 말인지. 정말 미칠 노릇이었구요. 후임병 놀리려고 하는 말인줄 알면서도 가만 듣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끊어 오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죠.

성의 없다. 정성을 안 들이고 대충 대충 성심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대충, 느낌 등과 함께 성의라는 단어 또한 계량할 수 없는 참 애매한 단어입니다. 성의없이 느끼더라도 성과가 좋을 때도 있고, 성의는 너무나 잘 느껴지는데 성과가 별로일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헤어숍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디자이너가 너무 대충대충 성의없는 태도로 잘라서 기분이 좀 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머리 스타일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반대 상황은 오히려 상상하기가 싫습니다. 성의는 없어보이더라도 성과가 좋은 쪽을 택하고 싶네요. 제가 그 디자이너의 성의에 집중했던 건 그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기는 게 처음이라 확신이 없었던 거겠죠. 만약 믿음이 가는 단골 헤어숍의 디자이너라면 성의보다는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하는데 마음을 썼을 겁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한참 후에 알게된 건 성의라는 건 끈끈함이 없고 믿음이 가지 않는 관계 속에서 나오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말고 내 동기와 그 선임병은 성의를 굳이 논할 거 없는 좋은 관계였거든요. 사실 가족간에 친한 친구간에 마음이 텅하는 동료간일수록 오히려 성의가 필요없고 격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성과가 더 필요한 관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그 성의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규정하려는 관계는 그 단어의 뜻만큼이나 측정할 수 없는 애매한 관계인거죠. 저와 대면대면했던 그 선임병 눈에는 똑같은 걸 해왔는데, 내 동기는 성의있게 보이고 나는 대충해 보였을 게 분명합니다.

성의라는 측정 불가능한 단어로 규정되는 관계는 그만큼 애매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신뢰가 구축된 상황에서는 성의보단 성과가 더 중요한 단어죠. 의도가 어찌됐는 간에 그걸 통해 일궈낸 성과가 있다면, 성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의있는 그때 잠깐의 기분 좋음보다는 성과있는 달콤한 열매가 내내 남는 관계가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주위에도 성의를 베풀 여유도 생길테니까요.

#씽킹브릭 
#보이지않는성의 #보이는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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