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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Sep 13. 2021

나는 누구인가?

어릴 적 내가 살던 작은 읍내에는 서점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목돈을 들고 서점에 가서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중학생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주로 문제집과 참고서를 샀지만 고전 문학이나 시집도 종종 구입했다. 내가 관심을 보인 것 중에서 가장 고가였던 책은 별자리나 천체에 관한 과학책이다.  


문제집 3~4권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컬러풀한 우주의 사진이 가득 담긴 책을 사보는 건 학생인 내게 허락된 최고의 사치였다. 내가 별자리나 천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춘기 즈음부터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 죽으면 이 삶도 끝나는 걸까?" 따위의 철학적 사유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답답함을 광활한 우주 사진을 보며 달래고는 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이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고 죽을 때까지 본능에만 충실한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도 동물이기에 주어진 삶과 본능에 충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일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현관에 새겨진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소크라테스의 잠언으로 알고 있지만 신전에 새겨진 누군가의 말을 여러 철학자가 응용하고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언젠가는 사멸하는 존재임을 알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이후로 이 말은, 인간의 겸허함을 각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을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회복하자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굳이 신과 연관을 짓지 않고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충분하다.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존재일까?

철학자들의 논리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단지 그것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게 이름, 직업, 가족 관계 등을 말한다. 한발 나아가 취미나 특기를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까지 명확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 사춘기 이후로 줄곧 품어 온 의문이 아직도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정채봉의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에는 '너는 누구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큰 화물트럭이 덮치면서 꽝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는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소를 댔다.


들려오는 소리가 다시 물었다.

"나는 너희 사회에서의 그런 분류 형식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네, 저는 사장의 부인입니다. 남들이 저를 가리켜 사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는 말했다.

"나는 누구의 부인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다시 대답했다.

"네, 저는 1남 1녀의 어머니입니다. 딸아이는 특히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신문사 주최의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들려오는 소리는 계속 물었다.

"나는 누구의 어머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침이 마른 혀로 대답했다.

"저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간혹 불우이웃 돕기에도 앞장섰습니다. 저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들려오는 소리의 질문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너의 종교를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응급실에서 깨어나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좀 가르쳐 주세요.. 내가 누구인지......" 


이 이야기를 읽고 나라면 어떤 대답을 할지 떠올려 보았다. 나 역시도 갑자기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름, 나이, 가족, 하는 일 등이 먼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들과 처한 환경, 지금 하고 있는 일 등을 제외하고 나면 이야기 속 그녀처럼 비로소 "나는 진짜 누구일까?"라며 심각하고 진지한 사유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인생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답을 미리 알고 그 답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면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씨앗 하나를 땅에 심는다고 해보자. 새싹이 자라나면 그게 어떤 식물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좀 더 자라 나무의 형태를 갖추면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많이 맺을지 확실하지 않다. 완전히 성장해서 열매를 맺으면 그 나무의 소임은 명확히 밝혀진다. 인간에게는 이 열매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언제 맺을지 모르는 자신의 열매를 맺기 위해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 맺을 수도 있고 죽기 직전이나 아예 못 맺을 수도 있다. 열매의 크기나 양, 질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부여한 내 존재의 가치, 삶의 의미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11년 전, 쌍둥이를 낳은 후 한 아이는 떠나보내고 한 아이는 장애아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나만 잘 먹고 잘살자'는 주의였다. 그때까지의 삶이 치열하게 경쟁해서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일을 겪고 남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내 삶의 가치도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해서 강의를 시작했다. 책을 세권 쓰고 나니 글도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강의를 하고 책을 쓰는 게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돈을 잘 버는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진실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위해서다.


나는 장애아 부모와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주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도 같이 변하고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내 존재의 가치이자 삶의 이유이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로 인해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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