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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Sep 10. 2021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당신에게

얼마 전, 유명한 걸그룹의 전 멤버 기사를 보았다. 중학생 때 성폭행을 당하고 걸그룹이 되어서는 멤버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는 그녀는 이미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고 이번엔 남자 친구와의 문제로 손목을 그었다고 한다.


리스트컷 증후군(wrist-cut syndrome).

상습적으로 손목 안쪽이나 팔뚝 등을 칼로 긋는 행위를 말한다. 죽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한 강박적인 행동이라니! 아마 기사에서 본 그녀도 진짜로 자살하려고 한 게 아니라 리스트컷 증후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흉터를 보니 문득 한 친구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과동기인 J는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똑똑하고 예쁜 친구다. 여대를 다니며 정치외교를 전공한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센 언니' 느낌을 풍기고 다녔는데 J는 외모로만 볼 때 센 언니 중에 센 언니였다. 체구는 야리야리했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어두운 매력마저 풍기는 친구였다. 검은색 긴 머리에 팝송을 잘 부르던 J를 대학 졸업 후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듣기로는 졸업하자마자 영국으로 건너가 NGO 활동을 하다 외국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J를 거의 20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유럽에서 살고 있는데 회사 일로 한국에 출장을 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단둘이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크고 환하게 웃었으며 세월이 비껴간 듯 자신감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어릴 적 친구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꾸밈없이 순수한 나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애쓰거나 실수할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J와 나도 지난 2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얘기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대화가 깊어지자 그녀는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그동안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해서 시계로 가려진 손목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대학 시절에도 가끔 어딘가 모르게 무겁고 어두운 기운을 내뿜기는 했지만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어 보이던 그녀에게 마음의 병이 있었다니! 안타까움에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술값을 계산했다. 그렇게 헤어진 우리는 다시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은 치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원인과 종류도 다양하다. 여자들이 흔히 겪는 산후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명절 우울증에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직장 우울증, 코인 우울증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습관처럼 SNS를 보면서 타인의 일상을 부러워하고 본인은 불행하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세상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고 그 속에서 고독한 인간의 마음의 병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나도 한때 꽤 오랫동안 우울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 쌍둥이 중 한 아이를 떠나보내고 장애를 가진 한 아이를 키우면서 멀쩡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뇌를 잘 사용하는 법을 강의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해 왔지만 감당하기 힘든 일이 연달아 닥치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 미래에 대한 비관까지 겹쳤는데 그런 상태가 너무도 잘 파악이 되는 것도 괴로웠다. 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법까지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실천할 힘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전까지의 자신감과 긍정 에너지는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얼마든지 낼 수 있었을 터. 정말 힘든 일을 겪어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도 남들처럼 잘 살고 싶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발버둥을 쳤다. 리스트컷 증후군도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잘 살고 싶다는 몸부림일 것이다. 우리는 정말 강하면서 한없이 약하기도 한 존재이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통 속에 산다고 한다. 항상 기쁘고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고 언제나 즐겁고 행복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강한 쓴 맛 뒤에 맛보는 달콤함이 더 진하듯이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헤쳐 온 사람에게 온다. 어쩌면 아직도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 J에게 오늘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안부 인사를 보내야겠다. 나도 한때 그랬던 것처럼 잘 지내냐는 말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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