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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Sep 07. 2021

고슴도치 딜레마

사춘기 아들과 엄마의 관계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있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해 가까이 다가가면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멀어지면 추워서 다시 모이고 또 멀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상반된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 '고슴도치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 용어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나온 고슴도치 우화에서 파생되었는데 실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온기를 얻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리라.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바늘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이에서조차 그 바늘은 종종 날카롭게 상대를 찌른다. 나에게도 많은 바늘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내보이지 않지만 어쩐 일인지 친정 식구들과 아들한테는 수시로 바늘을 드러낸다. 어째서 가장 친밀한 대상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걸까? 아마도 타인과의 관계에서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평범한 어머니는 자식을 매우 사랑하면서 동시에 싫어하는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다고 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은 아마도 자식을 키워본 어머니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이지만 때로 너무 싫고 밉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덜 공격적이라고 한다. 고슴도치가 서로의 바늘에 찔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듯이 자녀와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속으로 큰아들을 미워하면서 자책하고 괴로워했었다. 아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랑하는 아들을 이렇게 미워해도 되나?' '나는 아무래도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어머니라면 응당 자식을 한없이 크고 넓은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해야 마땅한데 그러질 못했으니 속으로 끙끙 앓은 것이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자괴감과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모순적인 사랑을 인정하고 나서야 '좋은 부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사춘기 아들에 대한 증오(혐오감과 분노가 같이 느껴지는 상태)마저 가끔 나타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마다 '너는 너, 나는 나'라고 되새긴다.


날카로운 바늘을 가진 내가 아들을 품고 가까이할수록 아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상처입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바늘도 세울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서로를 찌르고 상처 입히다가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엄마 품을 벗어난 지 오래인 아들을 나의 틀에 가두려고 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와 함께 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우리 모자는 자주 안 보고 서로 떨어져 있을 때 관계가 좋다. 상극(相剋)인 우리가 함께 있으면 너무 자주 충돌해서 옆에 있는 남편과 둘째한테도 불똥이 튄다. 그래서 아들이 가끔 캠프를 가거나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거나 강화도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의 엄마 집에 갈 때면 우리 집은 평화로움, 그 자체가 된다.


아들과 함께 있을 때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아들이 행여나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삶의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하진 않을까?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매 순간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다. 방황할지라도 자신의 몫일 텐데 개입하지 않고 얼마나 믿고 지켜봐 줄 수 있을지 솔직하게 자신은 없다.  


아직까지 나는 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최선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시행착오 중에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서로 적당히 온기를 나누면서 바늘에는 찔리지 않는 적정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고슴도치들이 머리만 맞대고 잠을 자듯이 오늘은 아들의 손을 잡고 잠시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이 녀석이 집에 빨리 들어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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