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눈앞에 싱싱한 레몬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칼로 반을 가르고 즙을 짜서 입안에 한 방울 떨어트려 본다. 아마도 침이 고일 것이다. 레몬의 강한 신맛을 상상하기만 해도 실제로 몸에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상상의 놀라운 힘은 플라시보 효과를 통해 알 수 있다. '플라시보(placebo)'라는 단어는 '좋아지게 하다, 만족스럽게 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복용하면 유용한 작용이 나타나는 위약효과를 말한다. 의학 용어지만 주로 심리학자들이 사용했는데 의학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에 플라시보 효과가 뇌과학으로도 입증되었다.
미 노스웨스턴대학 의과대학 재활의학연구소(RIC: Rehabilitation Institute of Chicago)의 마르완 발리키(Marwan Baliki) 박사와 바니아 아프카리안(Vania Apkarian) 박사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위약효과를 보인 환자들의 전두엽 안에 있는 중전두회가 반응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전두회는 감정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부위로 전두엽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역이다. 이 연구를 통해 플라시보 효과는 심리적인 기대 작용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적용된 사례가 있는데 바로 피로회복제의 쌉쌀한 맛이다. 실제로는 구연산의 맛이지만 박카스의 히트 이후로 사람들은 그 맛이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약제의 맛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로 다른 피로 회복 음료에도 구연산이 첨가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와 반대되는 현상이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을 주면서 "이것을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이다"라고 말하면 실제로 두드러기가 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노시보 효과를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례가 있는데 1950년대 포르투갈 항구의 냉동창고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인이 동사로 밝혀졌지만 당시 냉동창고의 온도는 전원이 차단되어 19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얼어 죽을 것이라는 상상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는 단순한 신념 그 이상이다.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몸과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다. 하버드의 Ted Kaptchuk 교수는 플라시보 효과를 "뇌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신체에 알리는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우리가 실생활에서 이 방법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당장 입꼬리를 위로 올려보자. 이 상태로 유지하면 굳어있던 얼굴 근육이 펴지고 긴장된 몸도 이완된다. 레몬의 신맛을 상상했을 때 침이 고였듯이 웃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어서 좋다.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표정이 굳어지는데 평소에 내가 짓는 표정이 곧 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 우울한 상태에서는 좀처럼 웃기가 힘들다. 하지만 뇌의 상태를 바꾸고 싶을 때 웃음만큼 쉽고 즉효가 나타나는 방법도 없다. 실제로 웃으면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등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하고 면역 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행복한 척해보자!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을 특효약이라 믿고 먹으면 효능이 있듯이 '나는 지금 행복하다' 하고 웃으면 진짜로 행복해진다. 일시적인 감정에 속지 않는 대신 뇌를 잘 속이는 사람이 뇌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입꼬리가 쳐질 일이 많은 요즘, 당신의 입꼬리가 항상 위로 향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