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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Mar 11. 2024

[1년차]4.일부러 실수 한 거 아냐?

끄적끄적 제약회사 직장인 성장기

'우리 부서에 발령 받은 신입 사원중에 아주 큰 대형 사고를 친 친구 입니다'


나를 소개하는 이사님의 첫 멘트였다.

그럴만했다. 전세계 직원들에게 메일을 한국말로 한 번, 영어로 해명 메일 한번을 보냈으니..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나는 호되게 혼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보냈던 두 번째 영어 메일에 더 관심이 꽂혀있었다.

'전 세계에 메일을 보낸 실수 한 신입 직원'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영어로 해명 메일을 쓴 영어를 잘하는 신입 직원' 정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신기할 노릇이다. 


일을 하다보니 알게 되었지만 종종 이렇게 아웃룩으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비단 한국지사 뿐만 아니라

다른 지사에서도 있었고 사람들이 대부분은 그 메일을 무시하고 넘어가는데,

내가 보낸 메일은 조금 유별나게 회사 시스템 화면이 캡쳐 되어 있어서

업무적으로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것인줄 알고 한국 지사로 문의전화가 들어 왔던 것이었다.

더 나아가내가 해명한 메일에 대해서 전 세계 직원들이 나에게 답장을 누르면서,

'전체 회신'버튼을 눌러 다시 전세계 직원에게 나에게 보내는 답장을 전달하는 헤프닝까지 이어졌다.

미국에서 일하는 어떤 직원은 나에게

'너무 재밌다며, 그럴수 있는, 흔히 일어나는 실수니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했고

언젠가 미국에 오면 자기 사무실에 와서 나를 소개하고 가 달라'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첫 멘트 말미에 이사님이

'저는 아주 좋게 생각해요 전 세계에 이런 직원도 있다고 알린거다 ' 라는 멘트를 더해 주시면서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신입 사원 특성상 회사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어느 소속인지 얘기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아~ 너가 그 메일 쓴 사람이구나'라고 나를 알아봤다.


어떤 사람은 속이 꼬였는지 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애기를 하기도 했는데

'너 일부러 실수 한거 아냐? 너 영어 잘하는거 티내려고?'


지금 돌이켜보니 나를 질투한 것인지 고깝게 본 것인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나,

결과론적으로는 영 틀린말은 아니게 되었다.

꿀인 줄 알았던 것이 똥인 것 같은 때도 있지만, 

똥인 줄 알았던 것이 꿀은 아니지만, 된장 정도는 되는 떄도 있다는 것. 

그러니 너무 낙담하거나 너무 슬퍼하기엔 언제나 이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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