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 내려가서, 후배와 함께 한 첫 call에서는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이야기를 지껄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두서없이 쏟아낸 것 같기도 했다.
내 애기를 들어줄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궁금해하기보다는 내 위주의 일방적인 대화였다.
자꾸 부딪히다 보니, 하루 만에도 조금은 나아졌다.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한 적절한 질문을 건네기도 했고, 이제는 조금은 '대화' 같은 대화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후배의 솔직한 평가가 새삼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이 후배가 '일을 잘하는' 영업사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함께 일했던 수많은 영업부 직원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 중 하나였던 것은 확실하다.
내가 가장 '일을 잘한다'라고 생각했던 영업부 직원은 입사 동기 오빠였다.
회사의 자원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으며, 활용을 통해 개인과 팀, 더 나아가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인 sales 달성을 넘어서 초과 달성을 이뤄내는데 탁월했다.
단순히 오빠가 내가 담당했던 제품의 실적을 잘 냈기 때문에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고객마다 목표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 그리고 맞춤형 접근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마케팅 담당자인 나에게 공유해 주었고, 그걸 달성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좋겠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여기서 중요한 point는 2가지였다.
첫 번째로 그가 공유한 목표는, 궁극적으로 나의 목표와 일치하는 공동의 목표였다. 단순히 본인 거래처에서 얼마 달성이 아니라, 해당 거래처가 전체 제품 실적의 몇 %를 차지하는지, 거기서 초과 달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엑셀 몇 번, 실적 조회 화면을 뒤져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며 일한다는 접근 자체가 그가 얼마나 전략적이고,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인지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두 번째로 어떤 부분에 도움이 필요한지를 명확히 전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많은 영업부 직원은, 막연하게 '도와달라'라고 하거나, 거래처를 그냥 같이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하곤 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내가 같이 방문한다고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 어떤 얘기를 해 주길 바라는 것일까?'
물론, 어떤 contents를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몫도 마케팅 PM의 역할이다.
내가 고민해서 대화 주제를 이끌어 갈 수 있지만, 나는 매일 고객을 마주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방문에는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목적 없는 한 번의 call거리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동기 오빠는 달랐다. 그는 고객마다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문마다 전달할 부분들을 정해두고, 반복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면, 본인이 공들여온 메시지가 통할 수 있도록 나에게 '한 방'을 부탁했다.
그의 계획을 공유받고, 계획에 동참하며, 내가 그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전반적인 과정이 실적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하면서 나는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과한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그 동기의 요청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는 10번은 더 고민하고 거절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존재에 대한 가치를 발견할 때, 큰 동기부여와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그와 함께 할 때, 내가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어떤 존재 의미를 주는지를 알게 하는 것은 엄청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