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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Oct 30. 2024

[4년 차]2. 홍 PM, 고생 많았습니다.

노예를 부릴 때는 신이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회사의 회계연도가 끝난 3월, 영업부와 함께 지난 한 해의 실적을 review 하고

각 제품별 혹은 부서별 걸려있는 incentive 결과를 발표하는 미팅을 가진 날이었다. 


마케터로 보낸 1년을 마무리하며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약이 잘 팔리겠나요?"라고 면박을 주었던 소장님과 웃으며 편안하게 대화하게 된 것, 

나와 내가 맡은 제품을 분리하지 못해 스트레스받다가 쓰러진 날 등등.. 


회의 시간을 마치고 자리를 마무리하는데, 

부산영업소 소장님이 조용히 내 앞에 오셔서 얘기를 건네셨다. 


키가 작으신 분이었지만 강단 있는 분이라는 게 느껴지는, 평소에는 크게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다. 


"홍 PM, 고생 많았어요." 

"아 네~ 소장님, 감사합니다. 작년 한 해도 고생 많으셨어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내 앞을 서성이며 머뭇거리는 소장님이 입을 떼셨다. 


"그.. 제가 한 가지 중요한 팁 하나 알려드릴까요?"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걸까..'

"네! 말씀 주세요!"


"노예를 부릴 때는, 신이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죠?"


정확하게 소장님이 의도한 바를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의도로 얘기를 하시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제약회사에서 마케터는 그 제품을 이끌어 나가는 선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여정의 끝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질지, 

혹은 고단했지만 손에 든 것은 많지 않은 모습이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장담할 수 없다고 해서 여정의 모든 순간이 불안하거나 걱정스럽다면 그 배에 탄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다. 

배를 이끄는 선장은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이 여정의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얘기하며 

선원들을 다독여야 한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속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원하는 이유는 나의 불안을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리더십에 전가함으로써

조금 더 안정된 마음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더 나은 미래, 공통의 목표를 위한 의미 있는 것으로 인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이야기를 소장님은 더 뇌리에 박히게끔, 노예와 신의 존재로 얘기하셨던 것 같다. 


그날 짧은 대화 뒤에, PM으로써 혹은 리더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 보았다. 

제품이나 회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우리의 전략과 계획이 가져다 성공의 모습을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그 보다 앞서 나의 불안감은 전가될 수 있기에 나 먼저 설득하고 믿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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