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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Dec 03. 2024

[5년차]10.끝나지 않은 논문... 게재기

내 논문을 개제할 수 있을까?

그 맘때쯤 이직 준비와 맞물려 나를 괴롭혔던 주제가 하나 더 있었다.  

논문이었다. 나는 전 해  8월 졸업식을 했다. 졸업 시험을 통과하고 졸업 논문 심사도 잘 마무리했고, 졸업 논문도 처음으로 인쇄소에 맡겨 20부를 제작했다. (냄비 받침대로 쓴다는 선배들의 얘기가 있었지만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특별한 기념품 같은 생각이 들어 20부를 인쇄했고 딱 한 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냄비 받침으로써의 쓰임도 하지 못하고 결국 버렸다)


지도 교수님은 내가 졸업하던 해에 하버드로 연수를 가셨다. 그리고 가시기 전에 나에게 논문을  저널에  pbulication 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는 솔직히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교수님이 제안을 하셨으니 뭐랄까 학습지 선생님, 과외 선생님처럼 나를 많이 지도, 첨삭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버드에 계신 교수님은 타깃 저널은 골라주셨지만,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했다.


논문을 완성시키기 위해 교수님과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교수님과 나 이렇게 단 둘의  회의에 어느 날, 어떤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다. 저자로 들어오신다며 회의에 참여를 하셨다.


그런데 영 내 연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화상 회의로 진행되는데 주로 교수님, 그리고 어쩌다 들어오게 된 사람은 화면을 끈 상태로 회의가 진행되었고 나는 막연하게 교수님 연구실의 박사 학생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조금 짜증이 났다. 아니, 저자로 같이 들어올 거면 내 졸업 논문이라도 한 번 읽고 들어오던가.. 아니면 건강보험 데이터에 대한 이해라도 좀 하고 오던가..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나에게 쏟아냈다.

아직까지 좋은 말로는 패기가 넘쳤고, 어쩌면 사회화가 덜 되었던 나는

"아니, 근데 이 데이터를 신청하는 방법이나 데이터의 구조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 짜증이 느껴지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조금 당황하신 것 같은 지도 교수님의 표정이 침묵 속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를 통해 꺼진 화면을 뚫고 느껴졌다.


그날 이후 회의에서 두 사람은 대체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서술된 내용과 관련된 피드백 정도를 주셨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내 딴에는 숟가락만 얹는 것 같은 그 사람이 다른 대학 교수였다는 것이다...

아니, 어디 무슨 과 교수라고 말했다면.. 조금 더 공손한 태도로 회의에 참여했을 텐데...

교수님이라 존중한다기보다는, 내 지도 교수님이 얼마나 민망했을지 다만 그 부분이 걸릴 뿐이었다.


어쨌거나 논문을 완성하고 제출하는 데 4-5개월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화상 회의로 만나려니 진행이 더뎠다.  완성된 논문은 교수님이 submission 해 주셨고, 놀랍게도 타깃 했던 저널에서 몇 가지 질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만 잘하면, accept 되어 개제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얼떨떨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건강보험 빅 데이터로 어떤 질환에 대한 논문을 SCI급 저널에 싣다니..

그리고 얼마 뒤 실제로, 내 논문이 진짜 실렸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별것 아닌 척을 해 보고 싶지만,

내가 들였던 시간과 노력과 땀에 대한 보답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받는 경험이었다.

줄 세우기 시험 봐서 통과하기 이런 게 아니라 나의 연구가 다르 사람들의 연구에 밑거름이 되고, 학술적인 어떤 의미를 갖고 그게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읽히는 어떠한 유형의 자산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또 다른 뿌듯함이었다.


긴 시간 '왜 나에게 이런 걸 시키나.... 2부 학생들은 졸업논문으로 다 마무리하는데 왜, 나는 이걸 해야 하나'생각했던 시간들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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