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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Sep 22. 2024

꼽등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허름한 빌라 그늘에 함부로 뻗어있는 잡초들

무릎만큼 긴 손톱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바깥은 찌푸리도록 밝고

벽돌 한 개만 한 지하방 창문은 아직 어둡습니다 


깊은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집은 가까워지는데 나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전구가 고장 난 복도에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벽을 더듬어 문을 열고 전등을 켭니다

방에 들어선 눈동자가 시립니다


오늘은 없겠지 하고 선 내 앞으로

시커먼 꼽등이가 놀라 펄떡펄떡 뛰어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꼽등이를 쫓아내고 싶지만

멋지게 때려잡아 갖다 버리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꼽등이가 무섭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징그럽게 생겨서 예쁨 한 번 못 받아보고

소리를 못 내 울어보지도 못할 거면서 왜 태어나 저 고생이냐고

밝고 넓은 곳들을 놔두고 이 시커멓고 좁은 지하방구석까지 구태여 들어와

누추한 더듬이를 저어가며 어둠을 만지는 일이 지겹지도 않은지 떠나지도 

못하고 몰래 숨어 옮겨 다니는데


찌린내 진동하는 부엌과 방 사이를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것이 이번 생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인

꼽등이의 표정이 몹시 궁금해질 때도 있지만

선뜻 다가가 내 손으로 쓰다듬어줄 수 없는 것은

혹시 지금 내 얼굴과 같은 표정일까 두려운 이유 때문입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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