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5년 만의 재회, 그리고 영원한 이별 이야기
녹사평역 사거리
신호등이 북극성처럼 명멸하는 밤
녹사평역 사거리, 신호등이 북극성처럼 명멸하는 밤. 그녀는 왜 운전대를 쥐어짜느냐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내 버릇을 발견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것은 여전했다. 나는 행여 그녀의 입술이 잊혀진 애칭이라도 발음할까 봐, 몸이 기울 정도로 핸들을 돌렸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를 유심히 보더니 예전과 변한 게 없다는 거였다. 얘기인즉 컵을 쥘 때면 새끼손가락을 세우거나, 민망할 땐 눈썹을 문지르는 행동. '니은'과 '리을'이 충돌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발음을 못하는 것까지. 하지만 그녀 역시 그대로였다. 빨간 머리 앤을 닮은 세계관, 제품 포장지의 '액상과당'과 '올리고당' 함유량을 비교하는 눈초리, 민망할 때면 다람쥐처럼 눈을 깜빡이는 행동, 나이 들지 않는 얼굴이나 목소리까지.
그녀와의 만남은 한 달 전 통화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5월, 어둠이 켜켜이 내려앉은 밤. 나는 도심의 야경에 일조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난데없는 진동음이 사무실의 텅 빈 고요를 몰아냈다. 낯선 번호였지만, 어쩐지 내 눈과 귀를 잡아 끄는 데가 있었다. 훈련소에선 수첩에 적어두고 연인의 머리칼처럼 쓸어 보거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 들여 누르던 숫자. 017에서 010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곤,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이제는 추억은 물론이고 한낱 숫자는 당연히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손가락이 숫자 배열을 기억하던 거였다. 애틋했던 추억이 손가락을 타고 심장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전화가 애타게 울수록 내 가슴도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나직한 목소리로 상대를 확인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땐 서로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스무 살 때부터 4년을 만났던 첫사랑, 그리고 다시 돌아선 뒷모습. 5년 만의 연락은 반가웠지만, 예상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서로의 소식은 간혹 접했기 때문에 언젠가 연락을 예상했지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화는 애절하거나 애틋하진 않았다. 풀어 둔 손목시계를 맨 것처럼, 애초에 끊어진 시간은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명랑했고, 그 사실을 자각하곤 실소마저 새어 나왔다. 통화를 마칠 즈음 그녀의 회사는 세 정거 떨어진 곳이라 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유리되어 있던 것은 단지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창밖의 빌딩 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그녀의 방이 밝아지길 기다리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것을 주던 그 시절
며칠 후 약속을 정했고 만남까지 20일의 암전(暗轉) 동안, 침전한 기억을 건져 올렸다. 스무 살 때 대학로에서 본 연극 '라이어', 그리고 창경궁 돌담길에서 어설프게 잡은 손. 사귄 지 200일 무렵 그녀의 권태기, 그리고 그녀의 무심한 눈빛. 훈련소에서 매일 받은 편지, 그리고 숨겨 보낸 레모나. 부대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알던 일, 그리고 고참 형들은 지금도 그녀의 안부를 묻는 일. 그녀의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에 마중 나간 일, 그러나 일이 늦게 끝나 두 시간을 기다린 일. 대학로에서 파란색 107번 버스를 기다린 일, 그리고 4년 동안 집까지 바래다준 일. 그녀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40분 걸린 일, 그러나 20분 만에 도착했다고 안심시킨 일.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사 왔던 오렌지 주스. 공포영화가 싫지만 그녀에게 이끌려 4년 치를 섭렵한 일까지.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것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바다를 품기에 연못 같은 내 가슴은 빈약했고, 질퍽한 밑바닥은 드러나고 말았다. 그녀가 떠난 내 마음은 반딧불이 떠난 습지로 변했으며, 남은 자리엔 음습한 이끼만 덥수룩하게 자랐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사랑에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반면 그녀는 나와 달랐던 것일까. 헤어지고 1년 남짓 지났을 때,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토막 난 우리의 사랑에 대해 회한(悔恨)이 남았다고 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며 내게 용기를 낸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그녀를 떨쳐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작아진 그림자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새로운 연인을 이유로 귀를 닫아 버렸지만, 굳게 닫힌 문 뒤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녀 역시 몇 번의 연애를 했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서로에 대한 원망, 애절함, 여타 감정은 모두 올올이 뭉쳐진 채 그렇게 사그라졌다.
약속 당일. 나는 40분 일찍 도착해서 차를 주차했다. 일찍 도착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언제나 미리 길을 밟아둔 뒤, 그녀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물론, 오늘도. 그녀는 내가 길을 잘 찾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6월이란 계절은,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어디에 발을 둘지 난감해 보였다. 비가 그친 도로는 얄궂게 잘팍거렸지만, 전조등을 노랗게 품는 관용도 보였다. 공기는 젖은 종이처럼 눅눅했지만, 이따금 서늘한 바람에 설 자리를 잃었다. 마침 남산에 낮게 깔린 구름 뭉치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화물선처럼 나의 추억을 싣고 느긋하게 떠났다. 내 발걸음도 그 길을 조용히 따라갔다.
만나기로 한 녹사평역 편의점에서 물 한 병으로 긴장을 달랬다. 때마침 그녀도 지하철에서 내렸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다섯 갈래의 개미굴이 소실점처럼 이어지는 장소에서 기다렸다. 표정 없는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고, 표정 있는 하나가 싱긋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숭덩 자른 단발머리를 제외하곤, 여전히 맑고 큰 눈과, 아몬드 모양의 손톱, 다람쥐 같은 미소까지. 기억 속의 그녀 그대로였다.
오늘만은 모든 것들이
재회하길 바라며
우리는 예약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샹들리에의 전구는 노랗게 열을 내고, 마름모꼴 수정에 반사되다가 이내 상아색 벽지에 흡수되었다. 장마철이어서 실내가 누거웠지만, 에어컨을 틀기엔 서늘했다. 노란 전구는 우리의 얼굴을 밝히지만, 동시에 침침하게 만들었다. 그녀 표정과 목소리는 그림자 연극처럼 희미했고, 나는 어렴풋한 손가락에 집중하는 아이처럼 자세를 앞으로 기울였다. 늘어진 우리의 그림자는 중첩된 유리창에 얼비쳤고, 네모난 세계 안에서 두 개로 쪼개지거나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늘어진 시계'(작품명: 기억의 지속)처럼 왜곡되었다. 그들도 오랜만에 만나,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메뉴를 정하고 선불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 카운터에 갔다. 그리곤 잔돈을 기다리는 동안 실내 분위기를 읽어보았다. 꽃병에는 누런 종이처럼 시든 꽃이 만지면 바스락 부서질 것처럼 낙심해 있었다. 우리가 연인이던 시절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했다. 벽에는 남미 골목에서 찍은 듯한 폴라로이드 사진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고 사진과 벽지 사이의 벌어진 틈을 눌러 고정시키고 싶었다. 오늘만은 모든 것들이 재회하길 바랐다.
점원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와선 하얀 레이스가 달린 컵 받침을 테이블에 얹었다. 그리곤 우리의 마음처럼 들뜬 거품이 흐를세라, 맥주 잔을 조심히 놓아주었다. 긴장한 탓인지 갈라진 입술에 한 모금을 축이고, 바삭한 감자튀김을 베어 물었다. 우리는 맥주 잔처럼 찰랑이는 서로의 이야기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중하면서도 수다쟁이가 된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라며, 입꼬리를 살짝 움직였고 끊어진 시간 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 말해 주었다. 언젠가 그녀를 만난다면 꼭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던 것들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서로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읽었다. 그리고 남은 목표를 응원했다. 우리는 헤어질 당시의 민감한 퍼즐도 맞춰 보았다. 분명 사소한 오해로 헤어졌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어쩐지 다시 연인이 되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다. 그녀가 싱긋 웃을 때면 여전히 내 마음이 들떴지만, 더 이상 간직하고 싶은 미소는 아닌 거였다. 이제 각자의 삶은 휘어질 대로 휘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심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을 다한다. 스무 살의 우리는 107번 버스 뒷자리면 행복했고, 그녀를 바래다주고 몇 시간을 돌아올 수 있었으며, 장마가 고작 20일 남짓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 했다. 당시의 우리는 단순했으며 시간도 느슨했던 거였다. 이젠 상황이 닳고 해져, 예전과 달라졌다. 각자의 끊어진 시간을 손목시계처럼 맬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한 것이다. 우리가 아닌 '각자'의 시간이.
온전한 이별까지
우리는 하얏트 호텔 맞은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창가에 비친 엷은 안개는 남산 등줄기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언급하진 않았지만, 오늘이 안개처럼 늘어진 '인생의 선상'에서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이별은 영원할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감정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터이다. 그래서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우리는 이별마저 어설펐다. 돌담길에서 어설프게 잡은 손처럼 말이다. 이별이라기보단 '헤어짐'이란 말이 적절했을 터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온전한 이별'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보다 말수가 적어졌다. 시간은 조금 전보다 전력을 더하고 있지만, 침묵했다. 침묵(沈默)이라는 문자 그대로 침전했고, 또 잠잠했다. 이윽고 눈치 없는 남산 타워에 조명이 들어왔으며, 산기슭엔 불빛이 별자리처럼 어른거렸다. 우리 앞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과 아이스커피잔이 녹으면서 눈물을 보였다. 시간도 하릴없이 흘러내렸다. 이윽고 카페엔 우리만 남았고, 그마저도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의자에 벗어둔 우리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망설였지만 그걸 자리에 남겨둔 채, 문을 나섰다.
경리단 중턱에서 그녀가 작별의 말을 꺼내려 했다. 나는 그녀의 입을 막곤,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를 태운 차는 비탈길을 조용히 미끄러졌다. 토요일의 경리단 길은 번잡했지만, 차창을 닫은 실내엔 고요만 그득했다.
녹사평역 사거리
신호등이 북극성처럼 명멸하는 밤
녹사평역 사거리, 신호등이 북극성처럼 명멸하는 밤. 나는 운전대를 젖은 수건처럼 쥐어짜며, 마지막으로 할 말을 생각했다. 마침 그녀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내 의식의 흐름을 문덕 썰었다. 왜 운전대를 쥐어짜느냐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거였다. 나는 "언젠가 너를 한 번쯤 만나길 바랐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였으나, 그녀의 웃음 때문에, 준비한 문장이 혀끝에서 녹고 말았다. 나는 말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행여 그녀의 입술이 잊혀진 애칭이라도 발음할까 봐, 몸이 기울 정도로 핸들을 돌렸다. 그리곤 노래를 틀어 정적을 메웠다. 우리가 좋아하던 자우림 노래 전주가 흘러나오려는 참에, 황급히 음악을 돌렸다. 그녀는 노래가 맘에 든다며 제목을 물어봤고, 나는 Adriana Calcanhotto의 Fico Assim Sem Voce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이사한 집에 바래다주는 건 내가 처음이라며, 익숙한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차로 데려다주는 건 낯설다고 했다. 우리는 6월이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망설이는 것처럼, 익숙하고 동시에 낯선 경계선에 서 있었다. 하지만 6월이 이내 여름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우리도 낯선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우리는 애써 거슬러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기억은 희미해지다가 소멸하겠지.
우리는 차에서 내려 한 번의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녀의 발자국은 아득해지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내가 길을 잘 찾는 이유.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것. 언젠가 그녀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뒤에서 주저앉은 사실. 한 번쯤 만나길 바랐던 속내. 여전히 자우림 노래를 듣는 것까지. 그녀는 앞으로도 모를 터이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의 자리를 마련해 준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서로 이성의 감정이 없다는 말'에 슬프다고 했다. 친구의 슬픈 감정도 메시지에 담겨 있던 것일까. 문득 얼음 송곳보다 날카로운 감정이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난도질 당한 마음은 한 구석이 시리고 저릿했다. 나는 영화 '러브레터' 속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죽은 남자가 과거에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가슴을 쥐어뜯은 것처럼 말이다. 4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5년간의 끊어진 시간을 거쳐, 비로소 오늘 온전히 이별한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슬프지 않았으나, 오늘에서야 이별의 감정이 덜컥 쏟아진 것이리라.
주말 내내 화톳불에 던져진 심장 거죽은 부르트고 타버렸으며, 결국 검붉은 형체만 남았다. 뒤이어 스무 살 무렵의 나도 나를 떠났다. 기억과 감정 또한 뒤를 따랐다. 모든 것이 심연으로 침전했고 고통의 기포가 빠글빠글 일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2015년 6월의 어느 날. 트럭 한 대가 물웅덩이를 밟고 기다란 흉터 자국을 남기고 지나간다. 나는 갓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채, 아스팔트에 난 상처가 아무는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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