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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Mar 21. 2016

작은 사건들이 만드는 나만의 이야기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가는 기내 이야기


계획한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어

꼼꼼한 성격 때문에 예상금액(About cost)을 산정하고, 여행지에서 사용한 실제 금액(Actual cost)을 기입하면 차액금(Differences)이 산출되게끔 엑셀 수식을 만들었다. 물론 대중교통 등 기타 정보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그동안의 내 여행 스타일을 먼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도중에 멋진 광경에 홀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길을 잃기 일쑤이고, 누적된 피로로 잠시 다리를 뻗기 위해 들른 카페에선 예산에 없던 비용을 지출할 것이다. 2014년 여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도심지로 들어설 당시, 일반 티켓을 끊고 프리미엄 열차에 타는 바람에 추가 비용을 지불한 경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꼼꼼한 듯 보이나 덜렁대는 성격 탓에, 계획한 대로였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재의 행복과 만족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우선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몇 년 전 낯선이들 사이에 앉아 비행한 적이 있다. 그들의 덩치는 나보다 1.5배씩 컸으니, 샌드위치 속 고깃덩이처럼 끼여 갔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저가항공 또는 이코노미석일 경우, 조금 일찍 공항에 가 창가석으로 바꾸자'는 것을 배웠다. 덕분에 11시간이 넘게 망부석이 되어야 하는 이번 비행에서는 와인과 철 지난 영화를 즐기며 꽤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를 2시간여 남기고 마지막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독일인 승무원이 파스타가 든 팩을 나에게 건네려는 찰나에 일이 벌어졌다. 손이 미끄러웠는지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 옆자리의 여성과 나는 담요를 덮고 있어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혹시나 물건을 점검하던 중, 담요가 답답했는지 빼꼼히 고개 내민 코트 소매에 소스가 묻어있었다. 당황스러움에 실어증에 걸린 토끼눈이 되었지만, 나보다 당황했을 승무원의 표정과 재빨리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애써 괜찮다며 안심을 시켰다.


그럼에도 조금 부루퉁해진 기분과, 언제 어떻게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것인가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면 눈 앞에 뜨거운 일몰이 어느 날의 사랑 고백을 재현하고, 성채가 역사의 무게로 내 눈을 짓누른다고 한들 우리의 마음은 문을 굳게 닫고 즐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결국 현재의 행복과 만족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우선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London의 Bayswater station 근처 드라이클리닝 가게


돌이켜 보면 작은 사건들은
나만의 풍성한 이야기를 만든다



승무원은 거듭 미안해하며 인보이스 한 장을 건넸는데, 세탁소에 서비스를 맡기면 항공사에서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불편했던 마음은 승무원의 양 볼에 핀 붉은 꽃눈에 녹아내렸기 때문에 고맙다는 미소로 풀린 마음을 대신했다. 다행히 여벌의 코트가 있었으며, '유럽의 겨울이 우리네 동장군만 할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세탁소는 아쉽게도 비행 스케줄과 맞지 않았지만, 며칠 후 런던 어느 드라이클리닝 가게에서 새 옷처럼 온상 복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계획한 대로인 것은 언제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잘 편집된 가이드북이 될 수도 있었을 여행은, 작은 사건들을 통해 나만의 풍성한 에세이가 되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면 누군가의 친절한 민낯에 감사했고, 잃어버린 길에서는 나만이 찾아갈 수 있는 카페를 기억하게 했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렸을 때, 잃어버린 길 마저도,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본 글은 2016년 1월의 여행기로, 발행일과는 시간과 계절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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