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쁜 회사였나
사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조건만 보았을 때는,
그렇게 나쁜 회사는 아니었다
내 체감상 기업규모, 업계 분위기,
기업이 소재한 지역의 평균적인 업체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이 회사는 업계에서 상위 30퍼센트 수준이었고,
나에 대한 대우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사실 이 회사에서 배운 것도 많다.
회사의 오너는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대단한 사람이 맞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회사를 만들었고,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며,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서도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확실하게 정립했고,
그 경영철학을 회사 주요 멤버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그러면서도 외부 사회에서 주목받지 않도록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다.
회사라는 작은 왕국을 만들었고,
그 왕국의 영역은 해외까지 확장되었지만,
그의 저력을 외부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단한 사람은 맞다.
그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의도했으며
작은 업무 하나에서도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상했고
그것들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실패가 확정된 듯한 그 순간에도 순식간에 회복하여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사실 난 이 사람을 괴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난 괴물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를 닮아갈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역량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려 하면
그 누군가의 삶은 산산조각 난다.
난 조용한 사람이고,
온유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공세를 가하여 압박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하여
최선의 방안을 찾아가려는 타입이다.
이후 퇴사를 결정하고 오너와 나눈 대화에서도
오너가 먼저 인정했다.
잘 생각했다고.
이직하려는 그곳은 전쟁터가 아닐 테니깐
더 잘 맞을 것이라고.
사실 오너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최적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