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vin Sep 19. 2023

죽음에 관한 고찰

당신은 죽음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만 24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에 조금 이른 나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예상보다 많은 죽음을 접해왔다.


미국에서 나는 Medical Assistant로 일한 경력이 있다. 한국에는 같은 직종은 없지만 간호조무사와 하는 역할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간호사를 보조하는 역할이 아닌 의사의 지휘 아래 의사를 직접적으로 보조한다. 그래서 주로 큰 대학병원보단 작은 개인 클리닉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정의학과 의사와 함께 짝을 이뤄 일했고 주요 타깃층은 Senior living facilities, 소위 요양원에 계시는 7-80대 노인분들이었다. 뵀던 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분은 101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노인분들을 주 환자층으로 대하는 직종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죽음을 비교적 자주 접하게 된다. 보통 환자분들이 응급상황으로 우리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응급상황이면 119를 부르지 우리 같은 출퇴근 시간 있는 가정의학과 클리닉을 부르지 않는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해서 진료를 본다. 가장 자주 있었던 일은 참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와 호쾌하게 대화도 나누시고 잘 지내시던 노인 분들이 다음 달 방문해 보면 요양원 호실에 이름표가 없어져 있는 경우. 프런트에 이유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돌아가신 것이다. 또는 정기검진을 위해 환자분 호실에 가는 도중 다른 호실에 대여섯 분들의 응급 구조사들이 여러 의료 장비들을 들고 환자를 보고 있는 경우, 그리고 그 호실이 우리 환자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죽음을 이렇게 가까이서 접한 건 이 일을 하면서 처음이었다. 처음에 이렇게 부고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먹먹하고 불편했다. "아니 저번 달만 해도 쌩쌩하시던 분이 왜? 어쩌다가?" 란 생각과 함께 그날 다른 환자분 들을 진료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던 처음이 어려운 법,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후엔 "000호 환자분 이름표가 없던데 돌아가셨나요? ... 네, 알겠습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남아있는 일들을 계속하던 내 모습이 보이곤 했다.


이 일의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부고소식을 듣고 힘들어하던 내 모습은 어디 갔지? 죽음을 너무 자주 접해서 무뎌지고 있나?"


실제로 몇 주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있을 동안에도 난 울지 않았다. 장손으로서 맨 앞에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발인을 하러 가는 와중에도 눈물은 나지 않고 그저 아버지를 향한 측은지심뿐이었다. 최근 서이초 교사 사건도 볼 때면 참 화가 난다. 하지만 이 분노의 대상은 악질 학부모와 대책 없는 정부이지 고인이 된 교사분에게 마음 아픔을 느끼는 건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내가 내놓은 답은 이렇다. 만약 영혼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죽어있는 내 몸뚱아리를 내려다보면서 "아이 죽어버렸네. 아직 해보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었는데.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난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어"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나도 놀라웠다. 나도 내 죽음을 그리 대수롭게 않게 여기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죽어서 슬퍼할 내 가족들,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게 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물론 난 죽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내가 내 죽음을 대하는 감정 역시 나 자신이 아닌 내 주변을 향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죽음에 무뎌진다 라는건 참 무서운 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소시오패스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죽음에 관해 아무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만 죽음을 대하는 내 감정의 대상이 고인분이 아닌 그 주변으로 먼저 향한다는 점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됐건 나의 죽음을 대하는 이 "격하지 않은 감정"이 훗날 내가 의사가 되어 사망선고를 할 때 내게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짐작해 본다. 의사가 되려 하는 아직 일반인/학생의 입장에서 의사분들이 사망선고를 무덤덤하게 하는 모습이 매정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모든 사망선고에 일일이 본인의 감정을 모두 쏟게 되면 내가 처음 Medical Assistant일을 했던 것처럼 감정의 후폭풍으로 인해 이후 하는 일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는 동안에도 옆 방에서는 이미 CPR을, 다른 한쪽에서는 code blue가 떠서 의료진들이 집합하고 있는 모습이 빈번하기 때문에 다른 희생자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죽음을 대할 때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할 듯 보인다. 여기서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하는 이유는 의사들이 정말로 죽음에 대해 정말 아무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순간만큼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