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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 Jan 16. 2024

간절함의 기준

???: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오빠 이번에 텍사스 말고도 타주에 의대 지원해 볼 생각인데 어디 써볼까?"


한창 지원할 만한 미국 의대들을 찾아서 추리던 도중 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내 동생에게 넌지시 던져본 내 질문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오빤 가고 싶은데 없어?"

"시애틀 놀러 갔을 때 좋긴 하더라. 근데 들어가기 빡세 비싸기도 하고."

"그게 뭐야. 간절함을 보여야지 간절함. 이제부터 맨날 시애틀 생각만 해 그럼.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잘 때도 시애틀 꿈만 꿔. 그럼 갈 수 있어!"

"뭐야 그게;;;"


걸핏 보기엔 그저 실없는 남매의 대화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짧은 대화에서 다시 한번 의대를 향한 내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의대지원을 향한 나의 태도가 첫 의대원서를 쓸 때와 원서를 또 쓰고 있는 지금 얼마나 바뀌었는지 생각해 봤다. 이전 글들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저번 의대지원 때 모든 보여주지 못했다고 느꼈고 준비가 100% 되어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2년이란 텀을 두며 의학에 관련된 경험을 해보고 그렇게 견문을 넓혀가는 최대한의 노력을 이번 원서에 녹아내려했고 마음가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이 꼭 간절하다는 것인지는 의문이 조금 들었다.


영어가 더 편한 동생은 나와 대화할 때 영어로 대답하는데 저 대화에서 동생이 쓴 간절함이란 단어는 "desperate"이다. 네X버 영어사전에는 "필사적인,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란 뜻으로 나온다. 즉, 내 동생은 정말 의대에 가고 싶다면 간절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를 표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그저 열심히, 후회 없이 잘 준비하자는 입장이었지 그렇게 막 간절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생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하다는 것은 사무치도록 원한다는 것이고 그 정도 마음가짐은 있어야 주변에서, 더 나아가 의대의 입장에서 볼 때 "아, 얘가 정말 의대에 가고 싶구나"라고 느낄 것 같기 때문이다.


간절함이라는 건 뭘까? 기준이 어디까지일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다른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만큼이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 결코 간절하지 않다. 의대 입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내 인생에 다른 소중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난 의대에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은 틀림이 없다. 인체에 대해, 질병에 대해, 그리고 환자-의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 모두들 내가 배우고 앞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피 같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재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간절하지 않은 걸까?


지금까지 내가 원하고 이뤘던 것들을 돌아볼 때 특출 나게 간절했던 적은 없다. 난 내가 불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특별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 우연히 고등학교에 불어 수업이 있어서 신청해 듣고, 대학에서도 최대한 머릿속에 담아두자 해서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이 선택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난 그저 기회를 잡은 것일 뿐 간절하진 않았다. 또한 의대 지원을 위해 학부 학점을 잘 따놓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남들 노는 시간에 나는 도서관 그리고 내 자취방에서 과제와 시험공부를 했고 그렇게 꽤 경쟁력 있는 학점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가 간절해서라기보다는 이것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이고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인 책임감, 성실함에서 비롯된 내 생활패턴이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평소보다 원하는 마음이 조금 클 때, 즉 간절함과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 때 더 이뤄지는 일이 없었다. MCAT을 세 번 동안 보면서 정말 좋은 점수를 얻고 싶었고 이땐 학점을 위해 공부를 했던 것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정말 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세 번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간절했었고 최선을 다했었다. 그렇기에 후회는 남지 않았다. 내 연애사도 그랬다. 정말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사귀고 싶었고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내가 나 같지 않게 되고 되려 매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간절했었고 그렇게 인생경험을 하나 쌓아갔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매사에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하지 않는다. 간절하다는 것은 기대가 크다는 뜻이고, 기대가 컸을 때 성공하면 물론 기쁘겠지만 그 반대의 결과인 실패와 같이 따라오는 상실감과 실망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하지만 간절하지 않다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큰 기대가 없었을 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래, 기대도 안 했어"에서 그치게 되지만, 만약 이뤄진다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된다.


여담이지만 시애틀에 있는 그 의대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던 도중, 본 의대는 미주 북서부에 위치한 주 출신 의대생들만 뽑는다는 글을 읽고 난 후 텍사스에 있는 나는 기회 자체가 없겠구나 하며 내 지원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동생의 간절함을 보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결국에는 의대를 간절히 원하지 같다. 아니, 지금까지 경험과 가치관으로 빗대어 볼 때, 그러지 않을 같다. 이미 시작부터 내가 그나마 가고 싶던 의대는 내가 간절한다 한들 기회 자체가 없을 것인데. 물론 후회는 남지 않도록, 내가 꿈꾸는 일과 미래를 그려나갈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좋은 결과는 간절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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