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체크포인트!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창 미국 의대 원서 지원기간이라 자소서 작성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었다. 반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의대들이 묻는 질문지에 답하면서 들었던 내 생각과 이에 대한 내 주변 친구들의 의견들을 적어보겠다.
미국 의대 원서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매년 5월에 열리는 1차 원서에서는 내신과 MCAT시험 점수, 그리고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자소서, 이렇게 크게 세 가지를 필요로 하고 모든 의대가 공통으로 요구를 한다. 그렇게 1차 원서를 제출하면 극소수의 커트라인이 있는 의대들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의대에서 2차 원서를 제출하라는 이메일이 개별로 온다. 보통 6월 말에서 7월 초부터 시작되는 2차 원서부터 속된 말로 헬파티 시작이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많은 지원자들이 시간 절약을 위해 전년도 원서 질문들을 토대로 미리 작성을 해놓지만 종종 의대들이 2차 원서 질문들을 그다음 해에 바꾸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걸린다. 당장 나만 해도 1차 원서 준비를 3월부터 시작했고 2차 원서를 마친 지금이 8월 마지막날이니 꼬박 반년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의대 2차 원서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모두 영어로 150자에서 600자 사이의 주관식 답변 형식이며 묻는 질문들 역시 의대마다 다르다. 가장 흔한 질문은 "왜 우리 의대에 지원했나요?"이다. 취준생들이 자주 접하는 "우리 회사의 지원동기가 무엇인가요?"와 같은 맥락이다. 평균적으로 지원자들은 한 번에 20군데 정도의 의대에 지원한다. 그 뜻은 모든 의대의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학교의 비전, 커리큘럼, 진행 중인 연구주제 등을 찾아보며 그 학교에 특별한 요소들을 각각의 2차 원서 답변에 녹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이 이뿐이면 참 좋겠지만 의대들은 지원자들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다. 그나마 의대들마다 조금 겹치는 질문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얘기해 주세요"와 "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게 될 텐데 본인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을 얘기해 주세요" 정도가 있다. 내가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바람대로 브런치에 올려둔 이야기 몇몇을 의대 2차 원서에도 녹아낸 것들이 있다.
첫 의대 도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확실하게 느끼는 점은 미국 의대 입시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신과 MCAT시험 점수라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긴 하지만 이는 입시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당장 내 주변사람들의 얘기만 들어봐도 4.0 GPA에 MCAT 점수 거의 만점인 사람이 의대에 하나도 못 붙었다는 썰이 들리는가 하면 많이 부족한 학점과 시험점수였지만 여러 의대에 붙어 골라가는 상황에 놓이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신 올 1등급이 아니면 의대는 노려보기도 힘든 한국에선 의아한 일일 수밖에 없다. 미국 의대는 왜 그럴까 나름 생각해 본 결과 미국 의대들이 각각 추구하는 비전과 원하는 의대생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자면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라는 의대는 의학연구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학교의 2차 원서 질문에는 다른 의대들은 잘 묻지 않는 그동안의 연구활동에 관해 묻는 항목이 있다. 혹은 UT Tyler라는 의대처럼 East Texas 지역의 공공의료에 힘쓰겠다는 비전을 밝히며 아예 특정 지역과의 연이 있는지 선호도를 묻기도 한다 (아마 한국의대에서 이런 걸 물어봤으면 지역갈등 부추긴다며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미국 의대들은 각자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고 그에 걸맞은 의대생들을 뽑길 원하고 또 이런 극히 주관적인 입시 시스템이 아주 자연스럽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의대에게도 그리고 의대생들에게도 더 잘 맞지 않나 생각한다. 객관성만 추구하다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보다 내신과 시험 점수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그에서 비롯한 인생관을 의학에 접목시켜 보여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특정한 면모를 추구하는 의대들이 있다면 더욱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얘기를 컴공과 출신의 친구와 나눴던 적이 있는데 "다양성"이라는 요소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직종에서나 중요하지 본인들의 직종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예로 컴공과 관련된 직종의 면접질문은 어느 회사던지 백이면 백 본인의 스킬 관련, 업무 관련 케이스 인터뷰지 직종 외의 어떤 다양한 경험을 해봤는지 묻지 않는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회사라는 곳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다양성보단 개개인의 능력이 훨씬 중요할 테니 말이다. 나도 어쨌든 의학이란 분야에만 몰두해 왔는지라 다른 분야에 대해선 편협할 수밖에 없는 점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친구들을 통해 듣고 배울 수 있는 점은 감사하다.
여담으로 최근 간호대를 나온 친구가 간호사 면접질문 중에 하나가 "본인이 무인도에 떨어졌는데 주변에 6명의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의 성격은 어떻고, 저 사람의 성격은 어떻습니다.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였다고 한다.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답하고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간호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이 면접 질문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적어도 간호상황에 연관된 질문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뭐 그 면접관들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제 2차 원서도 모두 마친 지금, 내년 봄까지 뺑뺑이로 계속되는 의대 면접 제의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내년 초여름까지 긴 여정을 인내심 있게 간간이 브런치에도 글을 좀 올리면서 잘 준비해 보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