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오빠 이번에 텍사스 말고도 타주에 의대 지원해 볼 생각인데 어디 써볼까?"
한창 지원할 만한 미국 의대들을 찾아서 추리던 도중 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내 동생에게 넌지시 던져본 내 질문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오빤 가고 싶은데 없어?"
"시애틀 놀러 갔을 때 좋긴 하더라. 근데 들어가기 빡세 비싸기도 하고."
"그게 뭐야. 간절함을 보여야지 간절함. 이제부터 맨날 시애틀 생각만 해 그럼.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잘 때도 시애틀 꿈만 꿔. 그럼 갈 수 있어!"
"뭐야 그게;;;"
걸핏 보기엔 그저 실없는 남매의 대화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짧은 대화에서 다시 한번 의대를 향한 내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의대지원을 향한 나의 태도가 첫 의대원서를 쓸 때와 원서를 또 쓰고 있는 지금 얼마나 바뀌었는지 생각해 봤다. 이전 글들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저번 의대지원 때 내 모든 걸 보여주지 못했다고 느꼈고 준비가 100% 되어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2년이란 텀을 두며 의학에 관련된 경험을 더 해보고 그렇게 견문을 넓혀가는 최대한의 노력을 이번 원서에 녹아내려했고 이 마음가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이 꼭 간절하다는 것인지는 의문이 조금 들었다.
영어가 더 편한 동생은 나와 대화할 때 영어로 대답하는데 저 대화에서 동생이 쓴 간절함이란 단어는 "desperate"이다. 네X버 영어사전에는 "필사적인,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란 뜻으로 나온다. 즉, 내 동생은 정말 의대에 가고 싶다면 간절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를 표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그저 열심히, 후회 없이 잘 준비하자는 입장이었지 그렇게 막 간절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생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하다는 것은 사무치도록 원한다는 것이고 그 정도 마음가짐은 있어야 주변에서, 더 나아가 의대의 입장에서 볼 때 "아, 얘가 정말 의대에 가고 싶구나"라고 느낄 것 같기 때문이다.
간절함이라는 건 뭘까? 기준이 어디까지일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다른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만큼이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 결코 간절하지 않다. 의대 입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내 인생에 다른 소중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난 의대에 들어가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은 틀림이 없다. 인체에 대해, 질병에 대해, 그리고 환자-의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 모두들 내가 배우고 앞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피 같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재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간절하지 않은 걸까?
지금까지 내가 원하고 이뤘던 것들을 돌아볼 때 특출 나게 간절했던 적은 없다. 난 내가 불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특별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 우연히 고등학교에 불어 수업이 있어서 신청해 듣고, 대학에서도 최대한 머릿속에 담아두자 해서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이 선택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난 그저 기회를 잡은 것일 뿐 간절하진 않았다. 또한 의대 지원을 위해 학부 학점을 잘 따놓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남들 노는 시간에 나는 도서관 그리고 내 자취방에서 과제와 시험공부를 했고 그렇게 꽤 경쟁력 있는 학점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가 간절해서라기보다는 이것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이고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인 책임감, 성실함에서 비롯된 내 생활패턴이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평소보다 원하는 마음이 조금 클 때, 즉 간절함과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 때 더 이뤄지는 일이 없었다. MCAT을 세 번 동안 보면서 정말 좋은 점수를 얻고 싶었고 이땐 학점을 위해 공부를 했던 것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정말 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세 번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간절했었고 최선을 다했었다. 그렇기에 후회는 남지 않았다. 내 연애사도 그랬다. 정말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사귀고 싶었고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내가 나 같지 않게 되고 되려 매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간절했었고 그렇게 인생경험을 하나 쌓아갔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매사에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하지 않는다. 간절하다는 것은 기대가 크다는 뜻이고, 기대가 컸을 때 성공하면 물론 기쁘겠지만 그 반대의 결과인 실패와 같이 따라오는 상실감과 실망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하지만 간절하지 않다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큰 기대가 없었을 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래, 기대도 안 했어"에서 그치게 되지만, 만약 이뤄진다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된다.
여담이지만 시애틀에 있는 그 의대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던 도중, 본 의대는 미주 북서부에 위치한 주 출신 의대생들만 뽑는다는 글을 읽고 난 후 텍사스에 있는 나는 기회 자체가 없겠구나 하며 내 지원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동생의 간절함을 보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결국에는 의대를 간절히 원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지금까지 내 경험과 가치관으로 빗대어 볼 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시작부터 내가 그나마 가고 싶던 의대는 내가 간절한다 한들 기회 자체가 없을 것인데. 물론 후회는 남지 않도록, 내가 꿈꾸는 일과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좋은 결과는 꼭 간절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더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