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대신 찾은 소명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그저 멍 때리거나 영상을 보거나 잠을 자서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 전문가들은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을 권하지만 이미 나가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무기력증이 너무나 심해졌다.
급기야 이런 기분에 숨이 막히자 생각은 제 멋대로 움직여서 벼랑 끝으로 나를 몰고 갔다. 고약한 생각들로 뒤엉켜 그야말로 기분도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특별한 외부 요인이 없는데도 나의 기분은 계속 밑으로 내려가면서 살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고”라는 책 제목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죽고 싶은데, 그 와중에 치킨은 먹고 싶었다. 치킨을 주문했다. 역시 치킨은 잠시나마 효과가 있다.
죽고 싶은데, 치킨이 먹고 싶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뭐지? 뇌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수많은 생각들에 질식될 것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제일 아이러니한 것은 삶의 중대한 목표가 생겨서 그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본래의 나라면 목표를 설정한 후 불도저처럼 적극성을 보이며 굉장히 열심히 뛰어드는 편이다. 그런데 원대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의욕이 자꾸만 저하되고 기분은 계속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 뇌가 정말 잘못된 것이 아닐까? 고약한 생각들이 찾아오고 무기력과 우울감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은 왜일까? 이성은 깃발을 목표에 꽂고 움직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한 발짝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다가 가까스로 붙잡은 것은 책이었다.
제목이 마음을 끌었다. 나의 뇌를 내가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작가는 자가면역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30년 넘게 기능의학 전문가로 활동한 톰 오브라이언 박사다.
‘의사들이 망가진 뇌에 붙이는 명칭은 우울증, 불안, 기억 상실, 뇌 안개, 만성 피로, 심지어 주의력 결핍 등 다양하다……즉 반응성이 높은 면역계 때문에 발생하는 염증이 원인이다.’ - 16p 피로한 신체를 에너지 넘치는 몸으로, 안개 낀 듯한 뇌를 명석하고 또렷하게~ ….. 식이요법과 운동 같은 생활방식의 변화가 뇌기능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연구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감정과 기분을 뇌에서 컨트롤한다고 생각했는데, 감정과 기분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장’이었다. 장은 제2의 뇌로 불리며, 장 상태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며 그래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장이 감정과 기분에 관여한다니 센세이션 한 정보였다.(4년 전 회고-현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지도)
운동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지만 식사는 매일 외부에서 먹고, 가끔 술을 마시며, 주식은 국과 고기종류, 치킨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먹는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지 않던가?
음식, 장, 염증과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뇌안개 증상에 대한 글을 읽으니 특정한 때가 생각났다. 공부를 하던 시절, 떡볶이와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땐 ADHD(주의력결핍장애) 스펙트럼에 있는듯했고 어리바리하면서 뇌가 늘 안갯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본래 식습관에서 벗어나 밀가루 음식과 과식을 하고 생활습관도 엉망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 조절이 안 돼 자주 화를 내고 정서적으로 늘 불안정했다. 흔들리는 바구니 속에서 이리저리 섞이며 사는 것 같았다.
비단 나뿐만이 우울한 기분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격이 예민하고 화를 잘 낸다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못된 다이어트로 장이 엉망이 되어있거나, 인스턴트를 자주 먹거나, 술에 빠져있거나 또는 스트레스로 늘 장문제를 갖고 있는가 하면 ,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
감정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에 있다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키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구는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감정의 수렁에서 함께 나가야겠다. “ 좋은 정보는 늘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지인들에게 책을 열심히 알렸지만, 흥미가 없고 어렵다며 읽지 않았다. ㅠㅠ;; 이 책을 읽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나의 소명을(?) 찾게 되었다. 서점에 나와있는 많은 건강 전문 도서들이 유익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전문용어가 많아 읽기가 어렵거나, 일반적으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건강 관련된 원서나 논문을 읽고 구두로만 전달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16년이 넘게 요가와 필라테스를 가르쳤다. 고객은 주로 1:1 수업이기 때문에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서사들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외적인 케어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케어를 해야 하는 일들도 많다. 몸과 마음은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취미로만 그리던 필라테스 선생님은 건강 정보들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매일매일 그리다 보니 나날이 실력이 늘었다. 기특하게도…
장, 미생물, 뇌, 식단, 운동,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리며 브롤리도 서서히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