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Sep 15. 2020

가을 산책

계절이 주는 기쁨


어제저녁에는 평소보다 늦게 산책을 나갔다. 하루에 한 번 꼭 산책하려고 마음먹지만 가끔 이마저도 귀찮을 때가 있어 미적거린다. 삼십 분 늦게 나갔더니 돌아오는 길엔 어둠이 짙게 깔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곤충들이 가을을 반기는지 풀숲에서 기승스럽게 울어댔다.


작년 이맘때인가. 아니, 단풍이 들기 시작했으니 좀 더 깊어가는 가을이겠다. 나는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을 글에 담아 놓았는데, 밖에 내놓을 기회를 찾지 못했다. 글은 한 해를 묵었다. 그때는 일 년 후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인적 드문 길을 걸을 줄 몰랐다.




추석이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인 구월,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동네를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다녔던 피트니스 클럽에 다시 등록해야 할 시기였지만 짧게 지나갈 황금빛 계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여름 산책은 즐겁지 않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들으면 계절이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덥고 추우면 걷는 게 즐겁지 않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 바람, 햇살, 이 계절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오전, 오후, 저녁, 그리고 어두운 밤. 매일 산책하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과 풍경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날 밤 남편은 회식을 마친 식당 앞에 차를 두고 왔다. 아침 일찍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나는 차창을 열고 가을 바람을 계속 들이마셨다. 공기는 시원하고 달았다.

나는 부리나케 운동화를 신고 산책로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침에 만나는 이들은 대체로 부지런한 젊은 엄마들이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그들은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그들은 혼자 걷는 법이 없다. 대체로 두세 명이 함께 걷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 같다. 산책로가 젊은 기운으로 출렁인다. 재잘대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 횡단보도에 늘어선 노란 버스. 안전 요원의 깃대가 열심히 아래위를 오르내린다. 가을 아침은 모든 것이 역동적이다.


한낮에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어서인지 산책로가 고요하다. 오후 네 시 무렵이 되면 해의 열기와 밤의 가라앉은 기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산책로에 등장한다. 그들은 아직 따사로운 햇볕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남자는 전보다 더 다리가 가늘어졌다. 수수깡같이 여윈 다리는 조금만 어디 부딪혀도 부러질 것 같다. 나는 무심한 척 재빠르게 그의 옆을 지나간다. 남자는 몇 해 전 옆집에 살던 사람이다. 남편 또래 나이인 그는 한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아내가 부축해서 걷다가 얼마 전부터는 혼자 걷는다. 지난 몇 해는 두 사람의 머리를 검은빛 하나 없이 하얗게 만들었다. 남자는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다. 산책로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한때 젊음으로 반짝이던 남자의 얼굴은 마치 회색 보자기를 쓴 듯 흐릿하다.


저녁 산책로에서 나는 개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랑하듯 개를 끌고 나온다. 하얀 녀석, 검은 녀석, 크고 작고 사납고 순한 녀석들이 모두 줄에 묶여 나온다. 쭈그리고 앉아서 끙끙대는 녀석이 보인다. 비닐봉지를 손에 쥔 외국 여자는 쉼 없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개들이 사나운 것 같다. 그들과 마주치면 덩치 큰 녀석들이 도망 다닌다.

황갈색 포메라니안, 제니를 키우는 친구는 물린 손가락을 보여주며 그래도 제니가 좋다고 말했다. 개는 존재 자체가 위로라며. 나 같으면 신문지를 말아 들고 버릇 들일 텐데, 말은 그리 하지만 지나가는 개 한 마리 한 마리에 시선이 가는 것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보다 개랑 나오는 사람이 훨씬 많다. 사람들이 많이 외로운지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나란히 서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를 봤다. 이맘때의 은행나무는 아직 잎이 물들기 전이라 떨어진 은행만 아니라면 여느 나무로 본다. 나무는 대조적이었다. 왼쪽 나무는 이미 열매를 모두 떨어트렸다. 샛노란 은행이 풀밭을 뒤덮었다. 오른쪽 나무 아래는 드문드문 은행 몇 알이 굴러다닐 뿐이다. 무엇이 이렇게 다르게 한 걸까. 오른쪽 나무 뒤에는 아파트 담벼락이 있다. 빛 조금, 바람 조금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으리라. 나는 따뜻한 버터에 볶은 은행의 녹진한 맛이 떠올라 발끝으로 은행을 한번 쓰윽 문질러 봤다.

숲길을 걸으며 노란빛을 띠기 시작한 나뭇잎과 아직 푸른 빛깔로 버티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그들의 한 달 후를 상상하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떨어진 풋감이 발에 차였다.


해지는 저녁, 산책할 때는 절로 ‘평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넘어가는 해로 숲은 검어 보였다. 나무 둥치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나를 힐끗 쏘아보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새가 날갯짓하며 울었다. 그 소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새는 내가 생각에 잠겨 걸을 때는 울지 않다가 한순간 의식이 돌아오면 울었다. 저만치 앞에서 감색 제복을 입은 아파트 경비원이 느긋하게 자전거를 발로 저으며 다가왔다.  


밤은 고요하다. 나무도 새도 벌레도 모두 쉬는 시간.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잎이 도드라져 보였다. 밤은 낮과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나는 천천히 걷다가 이따금 종종걸음으로 빨리 걷으며 밤의 고요를 깨트린다. 팔을 치켜들고 휘두르다가 뒤로 빙빙 돌리고, 두 팔을 허리춤에 갖다 대고 양반처럼 걷는다. 밤이 모든 걸 가려준다. 이따금 인기척에 섬뜩해 뒤를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산책을 마친 나는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이전글 이카루스, 국가를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